이재용 회장의 '뉴삼성'이 초일류기업 지위를 공고히 하려면 걸 맞는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 재계는 불안정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이 시대와 기술 변화에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할 '컨트롤타워' 구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내달 초 예정된 정기인사에서 미래 지향성을 담는 동시에 취임 첫해를 안정적으로 이끌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조직 혁신 핵심은 컨트롤타워 설치로 요약된다. 삼성은 부문별 3개 태스크포스(TF)가 중심축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계열사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강력한 조직 재건이 필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7년 2월 말 미래전략실을 폐지하고, 그 역할 중 일부를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 제고(삼성생명)·EPC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 3개 TF 조직으로 이전했다. TF 체제는 각 부문 자율경영체제로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였으나 중장기 신사업 전략과 투자, 사업재편과 중복투자 조정, 계열사별 방만 경영 차단 등 기능은 미흡하다.
당장 이 회장이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신사업 분야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서려면 이를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 현 구조로는 그룹 차원 일사불란한 전략을 마련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 비전 제시도 쉽지 않다.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도전해 기업 규모를 키웠다. 신사업 전략 수립은 옛 미래전략실이 주도했다. 미전실 해체 후 5년간 중장기 관점의 굵직한 신사업 전략이 부재하다는 것이 컨트롤타워 설치 필요성을 방증한다. 삼성이 '2030 시스템반도체 비전' 다음을 위한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삼성전자 전 고위관계자는 “컨트롤타워 구축의 당위성이 충분한 만큼 사업과 미래만 보고 공격적으로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맡을 인물은 과거 사람을 다시 모으는 수준이 아니라 '뉴삼성'에 적합하게 쇄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삼성 그룹 지배구조 개편 역시 과제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회장과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보유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그룹 주력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 회장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지배구조 탓에 이 회장이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면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금융사 보유 비금융사 지분은 다른 계열사 지분과 함께 최대 15%까지만 의결권이 허용된다. 이 회장 등 최대 주주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은 삼성생명 8.51%를 포함해 20.75%에 달하나 의결권 지분율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국회 계류된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은 본회의 통과하면 삼성 지배구조 개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대부분을 시장에 매각해야 한다. 이 경우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고리로 한 지배구조가 무너져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된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와 보험업법 개정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시나리오는 삼성전자 인적 분할이 꼽힌다. 삼성전자를 인적 분할한 뒤 투자회사는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을 인수하고, 삼성물산은 삼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투자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 그룹이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와 보험업법 개정에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가 삼성전자 인적 분할”이라고 말했다.
내달 초 예정된 이재용 회장 시대 첫 정기인사에서는 조직 혁신과 안정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인물이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로 만들 컨트롤타워와 삼성전자 핵심 사업부 수장 인사 폭은 최소화해 조직 안정을 추구하면서, 차기 CEO 후보를 발탁하는 인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지원TF를 이끌고 있는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로 만들어질 컨트롤타워 수장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미래전략실 경험을 살려 이재용의 뉴삼성 그림을 정밀하게 그릴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등 이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 전 경영지원실장이었던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의 역할도 주목된다.
지난해 구축한 한종희·경계현 대표이사 '투톱' 체제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은 세트와 모바일 부문을 융합한 '팀 삼성' 구축을 통한 시너지 창출 미션을 수행하고 있어 향후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경계현 DS부문장 사장은 반도체 시황 악화라는 위기 상황이라 이를 안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생활가전사업부 이재승 사장이 최근 자진 사퇴하며 후임 인선이 필요함에 따라 일부 사업부장급 인사가 예상된다. 메모리·파운드리·모바일 경험 등 핵심사업부장이 연임 또는 교체되는 상황을 보면 이 회장의 뉴삼성 시대 차기 CEO를 미리 점쳐 볼 수 있다. 부사장급 이하 임원인사에서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30·40대 젊은 인재 중용 트렌드가 가속화되고 여성 임원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