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발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에 따라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 10월 ㎾h당 27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규모는 2022년에만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20조원 넘는 한전채권, 채권시장 교란하는 블랙홀
한전의 적자는 불가피하다. 전력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계와 기업 등에 파는 가격보다 커서 전력을 팔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한전에서는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23조43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한전법상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값의 2배까지만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현재 적자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한도 초과로 더 이상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여야 정치권은 최근 한전의 채권 발행액을 '자본금+적립금'의 현행 2배에서 8배 또는 10배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이 개정되면 한전은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한전 채권은 국가와 동급의 신용도에 표면금리 6%에 이르는 이율로 국내 채권시장 수요를 빨아들인다는 점이다.
◇국채와 동급 신용도, 하이일드 채권 수익률
불과 1년 전에 한전 채권 3년물의 표면 금리는 1~2% 초반이었다. 하지만 한전 채권 3년물의 표면금리는 최대 5.99%에 이를 정도로 급등했다. 전 세계가 경기침체와 킹 달러로 인한 고금리 상황에서 한전은 막대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시장 예상보다 너무 많은 채권을 발행하게 됐다. 그 결과 국채와 동급의 신용도에 하이일드 채권 수익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채권 수요자는 대거 한전 채권에 몰리게 됐다.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공기업의 채권 판매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일반 사기업 회사채는 아예 외면받는 '돈맥경화' 현상이 발생했다.
일반 사기업은 채권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을 포기하고 은행 대출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올해 중(이하 1~7월 기준) 기업이 금융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93조4000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대폭 확대되었지만 정작 회사채 조달 규모는 급감했다.
문제는 은행 대출이 채권 발행에 비해 조달비용이 더 높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세계적인 경기 침체 상황에서 조달 비용까지 더 높아지면 기업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최근 채권시장을 어지럽히는 한전에 채권 발행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SMP 가격이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할 수도 없는데 한전의 채권 발행을 계속해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전채 분산 발행, 은행대출 전환 대안?
이달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장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한전채 지원 방안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한전채 물량이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도록 공사채, 은행채, 지방채까지 얘기해서 분산하고 있다”면서 “한전도 자금이 필요한데 한전채로 조달하면 채권시장이 서로 어려워진다. 발행 분산 외에도 은행 대출 전환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전이 필요로 하는 금액이 워낙 큰 규모여서 은행 역시 대출을 위해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한전이 발행하나 은행이 발행하나 막대한 채권이 발행된다는 결과는 동일하다. 은행채 역시 신용도가 높아서 일반 사기업의 '돈맥경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해외채권 발행 역시 국내 채권 발행에 비해 조달 비용이 높아 가뜩이나 천문학적인 규모의 한전 적자를 더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고, 결국 정부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전채 해소는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한전의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으로, 지분율이 32.9%에 이른다. 정부 역시 한전 주식의 18.2%를 직접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은행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한전이라는 공기업의 부채는 정부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최종적으로는 적자가 심해질수록 국민 세금으로 손해를 메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에서 SMP상한제를 곧 시행한다지만 한전 적자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산업부 행정예고 자료에 나온 SMP 상한제 비용편익 분석에 따르면 매달 1422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예고되는 수준이어서 올해 한적 적자 전망치 40조원과 비교할 때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채권 발행이나 은행 대출 모두 여의치 않아서 한전 적자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 부담스럽겠지만 한전 적자에 채권이나 대출 등 조달 비용까지 추가해서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보다 정부가 한전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여러 측면을 고려했을 때 부담이 가장 적은 대안이다. 지난 2008년에도 한전에 2조798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자 정부에서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6680억원을 공급한 전례가 있다. 2008년 당시 한전 적자 규모는 연결기준 2조7981억원으로 올해 적자 전망치 40조원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였다.
특수한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시장원리에만 충실하면 한전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 국민복지와 생활물가, 전기를 사용하는 산업경쟁력이라는 복합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하다. 설령 전기요금을 인상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가계와 기업 모두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안 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한전 적자를 유의미하게 완화시킬 수 있는 예산 편성을 본예산 또는 추경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홍정민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부터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경제 전문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21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시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21대 국회 초반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산업과 경제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변호사, 경제학박사, 융·복합 금융 전문가, 벤처 최고경영자(CEO)라는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당내에서는 정책위원회 부의장, 원내대변인 등을 지냈다.
<표> 한국전력 신용등급 정보
*Moody's (Aa2) 등급은 국채 신용등급과 동일
**독자신용등급은 국가 보증 없이 한국전력공사 재무제표로만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waytoh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