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성통신·이동통신 업계에 화제가 된 소식이 있다. 미국 AST스페이스모바일이 첫 블루워커(BW)3 통신위성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이 회사의 위성통신 개념은 로켓을 재활용하는 스페이스X만큼이나 혁신적이고 흥미롭다. 로켓 하나에 약 20기의 통신위성을 탑재, 한 번에 쏘아 올린다. 우주에 올린 위성은 스스로 자리를 찾아 가며 합체한다. 풋살장 크기만한 24×24m의 거대한 안테나를 갖춘 통신위성으로 변신한다. 위상배열 안테나와 빔포밍 기술을 적용, 지상의 원하는 곳에 전파를 전송해서 휴대폰과 직접 통신한다. 이용자는 별도의 위성통신 단말, 안테나를 구입할 필요 없이 위성과 현재 기준 약 30Mbps 속도로 직접 통신할 수 있다. BW3는 이전까지 시험용 위성 2기에 이은 상용서비스를 위한 첫 번째 위성이다. 실현된다면 위성통신은 물론 이통 기지국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적이라며 의구심을 표하는 투자자와 전문가도 많다. 하지만 부러운 건 도전 정신 자체다. 스타트업인 AST스페이스모바일의 아이디어 하나만 보고 AT&T, 라쿠텐, 보다폰 등 유수 기업들의 투자와 협력이 몰렸다.
혁신을 이끄는 첫 출발은 도전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역사에서는 안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일이 현실화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이스X의 복잡한 계산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진 로켓 재활용은 대중화됐다. 1988년에 출시된 모토로라 '다이나택8000SL'은 무게 700g의 아날로그 방식 '벽돌폰'이었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유선 초고속인터넷보다 빠른 5G의 1Gbps로 통신하며 '접는 폰'을 들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기업이 주저할 때 정부가 도전 정신을 발휘하며 기업을 독려했다.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부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통 상용화, 초고속 인터넷 확산까지 정부가 먼저 어젠다를 이끌고 기업이 참여해서 성공 신화를 썼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민·관 협력의 도전 모델이 예전만큼은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와이브로가 그랬고 5G 이통 상용화도 예전 같진 않았다. 28㎓ 대역 5G와 할당 취소·단축 사태와 관련해서는 이통사와 정부가 서로 잡은 손을 놓는 지경까지 왔다. 혁신기술 연구개발(R&D) 사업도 과거와 다르다. 위성통신과 6G 기술개발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에서 잇달아 고배를 들이켰다. 미래 혁신 인프라 선점을 위해 '돈줄'을 쥔 관료가 예전같이 화끈하게 힘을 싣지는 않는다. 기업도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고, 정부가 밀어 주어도 돈이 안 되는 곳에는 몸을 움츠린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 접근 방식과 지향점을 바꿀 때다. 정부는 산업생태계를 키워서 국부를 창출하는 게 기본 소임이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판을 키우자'다. 시장 진입을 막고 매력 포인트를 떨어뜨리는 패인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파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R&D도 마찬가지다. 중요하지 않은 분야에 자금을 나눠 주는 방식보다는 시험 위성 발사와 같이 기업이 리스크로 쉽게 나설 수 없는 일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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