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분야를 취재하며 최근 가장 많이 듣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2018년에 필팩을 인수하면서 온라인 약국과 약 배송 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에는 원격의료 기업 헬스네비게이터를 인수했고, 최근에는 1차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원메디컬을 5조원에 사들이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10조원 규모의 재택 의료 업체 시그니파이헬스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이 같은 아마존의 헬스케어 사업 행보에 국내 업계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마존뿐만이 아니다.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이 헬스케어 관련 신제품 출시와 인수합병(M&A)에 투자한 금액만 9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알파벳은 구글 핏빗과 자회사 베릴리를 통해 헬스케어 사업을 한다. 애플은 세계 1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애플워치를 통해 혈중산소포화도, 심전도, 체온 등 건강 데이터 모니터링에 강점이 있다. 2024년 의료보험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중국에서도 원격의료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알리바바, 징둥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잇따라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인구구조 변화와 신종 감염병 위협 증가로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유망 분야이기 때문이다. 미래 의료가 환자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해서 IT 기술과 시너지가 크다는 것도 배경이다.
조 단위 인수합병(M&A)과 의료 인프라 쟁탈전이 벌어지는 해외와 비교해 우리나라는 잠잠한 모습이다. 삼성, SK, 롯데 등 대기업이 바이오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사업 모델이 의약품 위탁생산에 치우쳐 있다. 통신사와 보험사도 앞다퉈 유전자 분석 서비스나 건강관리 앱을 선보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네이버케어, 헬스케어연구소, 카카오헬스케어를 출범하며 사업을 본격화했지만 가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 2020년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 기업의 총 매출액은 1조3539억원으로 글로벌 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헬스케어 시장이 쉽게 열리지 않는 이유로 경직된 규제와 대규모 자본 투자의 부재를 꼽는다. 기술 개발, 인력 확보,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는 자본 투자가 필수지만 강력한 규제와 의료계 견제로 대기업이 이 분야에 쉽게 뛰어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한다. 규제 혁파를 시도해도 자본 투자가 의료 영리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에 번번이 막힌다.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커지고 디지털헬스케어를 기반으로 의료체계가 재편될 공산이 높다. 국민 건강관리를 위한 수단이 해외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헬스케어 서비스가 하나쯤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지나치게 경직된 규제와 여론 속에서는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투자는 이뤄지기 어렵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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