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이맘때 유통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 상대로 수취한 수수료율과 거래 행태가 드러난다. 거래상 지위를 이용한 일방적 비용 전가를 억제하고 중소 납품업체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수료율이 높은 순으로 줄을 세운다. 올해도 TV홈쇼핑의 실질 수수료율이 29.2%로 가장 높고 온라인쇼핑몰은 10.3%로 가장 낮다는 결과를 내놨다. 숫자만 놓고 보면 홈쇼핑은 납품업체에 더 많은 부담을 떠넘기는 갑질 업태로, 온라인몰은 착한 업종으로 인식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TV홈쇼핑은 방송 기반 유통 산업이다. 유통사업자면서 방송사업자인 독특한 특성을 띤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상품을 시청자에게 소개하고 대량으로 판매한다. 위·수탁 거래 비중이 가장 높다. 협력사의 상품이 더 많이 팔리도록 쇼호스트를 투입하고 방송 송출 대가로 막대한 송출수수료를 지급하는 것도 홈쇼핑사의 역할이다. 당연히 수수료도 다른 유통채널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판매 채널을 제공하면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찾아 구매하는 목적형 쇼핑이 주를 이루는 온라인몰과의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있다.
기업별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줄 세우기도 문제다. 공정위는 수수료율이 가장 높은 브랜드로 CJ온스타일, 쿠팡 등 기업명을 특정해서 공개한다. 이 경우 다른 회사보다 더 거래상 지위를 악용하는 기업으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CJ온스타일이 다른 홈쇼핑사보다 수수료율이 높은 것은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패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CJ온스타일은 패션 카테고리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마진이 높은 의류 특성상 다른 상품군보다 수수료율도 높다. 반대로 무형상품 비중이 높으면 전체 수수료율은 낮아진다. 각 회사의 사업 전략에 따른 차이일 뿐 납품업체의 부담 가중과는 연관성이 없다.
쿠팡 역시 독특한 사업 구조가 불러온 오해다. 판매수수료 사업 비중이 낮은 데다 특약 매입인 로켓그로스는 다른 업체와 달리 물류 보관과 배송, 고객서비스(CS) 모두 쿠팡이 맡는다. 수수료율은 다른 e커머스보다 높지만 통합 풀필먼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동일 비교는 어렵다.
공정위가 유통업체의 거래 실태조사를 공개한 지도 벌써 10년째다. 수수료율 공개를 통해 부당한 갑질을 막고 납품·입점 업체의 거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문제는 공개된 수치를 단순 비교해서 업태·기업별로 줄을 세울 때다. 업종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무의미한 줄 세우기는 자칫 '숫자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업태별 수수료율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명목수수료와 실질수수료 비교다. 명목수수료는 계약서에 기재된 수수료다. 대부분 업체는 실질수수료율이 명목수수료율보다 낮지만 일부는 오히려 높다. 계약상 정한 수수료보다 실제 수취하는 수수료가 높다면 납품업체는 더 큰 부담이다. 대형 유통사의 갑질을 막겠다는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10년 동안 관행처럼 이어 온 수수료 줄 세우기가 아니라 실효성을 높일 다른 형태의 조사 결과 발표를 고민할 때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
박준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