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기술혁신을 위한 R&D 프로세스 개선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

지난 21일 중동의 카타르에서 세계 3대 스포츠 제전인 월드컵이 막을 올렸다. 공을 차기에는 많이 덥고 본선 진출 경험이 없는 열사의 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기까지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은 1년을 연기하며 어렵사리 개최됐고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외국인 무관중 경기로 열렸던 기억과 비교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며 지구촌이 코로나19를 넘어 일상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아울러 2022년 11월은 팬데믹 이후의 세계 질서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이벤트가 아세안에서 시리즈로 개최된 전례 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캄보디아 프놈펜의 아세안 정상회의에는 한·중·일 정상뿐만 아니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참석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도 세계 주요국 정상들과 국제기구 지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도 태평양 연안 21개국의 대통령과 수상들 행보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개최된 아세안 지역에서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세계 정상들이 그리는 세계질서는 무엇이며 우리 대응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세계는 지금 미·중 경쟁과 러·우 전쟁을 겪으며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산업과 기술을 전략자산으로 활용하는 국가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ET시론]기술혁신을 위한 R&D 프로세스 개선

그간 안정적 공급망을 바탕으로 무역과 투자를 통해 성장한 우리 경제는 기술패권 경쟁시대를 맞아 전략기술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첨단기술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혁신 역량 강국이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가 발표한 '2021년 혁신랭킹'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또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시아 국가 1위, 세계 6위를 차지했다. R&D 집중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성, 첨단기술 집중도, 교육 효율성, 연구 집중도, 특허 활동 부분에서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디지털 전환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응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출을 늘렸고 그린 전환 시대에 맞춰 전기차와 이차전지 산업 발전을 주도했다. 또 진단키트를 앞세워 연 3조원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바이오기업을 탄생시키며 우리의 혁신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탁월한 우리 기업 혁신역량을 살리고 국가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산업기술 R&D 프로세스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첫째, 산업기술 R&D 기획에서 '비즈니스 모델(BM:Business Model)' 방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파괴적 연구개발(Destructive R&D)을 지원하기 위해 BM을 중심으로 연구 과제를 기획한다. 기존 틀과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비즈니스 모델형' 기획 과제는 '경쟁형 R&D'라는 특징도 함께 갖는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도전적 목표를 여러 연구자가 경쟁 과정을 거치며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둘째, 산업기술 R&D 평가 과정에서 '사업성'을 강조한다. 그간 R&D 평가는 잘 짜여진 '계획' 및 우수한 '기술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R&D 성과가 시장에 나와 실현돼야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평가하는 '사업성'이 평가 기준으로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이에 R&D 과제 선정 평가에서 '사업성' 배점을 확대하고 중간 단계 평가에서 '사업성 심층 재검토' 제도를 도입한다.

셋째, R&D 프로세스 전반에서 '연구자 자율성과 편의성'을 강화하고 연구자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정산과 회계시스템을 개선한다. 연구개발 목표와 연구비 사용 계획의 자율적인 변경, 자체정산 결과를 인정하는 이른바 'R&D 자율성 트랙' 적용 대상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 또 실시간연구비관리시스템(RCMS:Real-time Cash Management System)과 건강보험관리공단, 국세청, 관세청, 특허청 등 정보시스템 간 연동을 통해 정산 증빙자료가 자동으로 등록되는 등 연구자 업무를 대폭 간소화한다.

이처럼 과제기획에 'BM' 도입, 과제평가에서 '사업성' 강조, 그리고 운영에서 '자율성 확대'를 중심으로 산업기술 R&D 프로세스를 개선하면서 기술 개발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인터넷에서 위성항법시스템(GPS) 그리고 mRNA 백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파괴적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국방성 연구계획국(DARPA) 대표 상품인 '포상형 R&D 프로그램' 도입도 향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연구 목표만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세계 누구에게나 포상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 자율성과 유연성을 대폭 확대해 혁신을 가속화하자는 취지에서다.

지속적인 R&D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우리 기술혁신 역량 극대화는 기술패권 경쟁시대에 우리 대응 전략으로 더욱 강조돼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정책, 경제, 통상 분야에 두루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한 후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 통상협력국장, 통상교섭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주유럽연합·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 상무관과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지난 9월부터는 R&D 기관인 KEIT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사에서 KEIT를 '혁신성장 촉진자' '산업 대전환 견인차'로 거듭나도록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 art@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