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에 유리 기판을 활용하면 데이터 처리 규모는 여덟 배 증가하고 전력소모량은 절반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반도체 패키징의 '게임체임저'가 될 것입니다”
지난 2일 경북 구미 앱솔릭스 연구개발(R&D) 센터. 방진복을 입고 팹에 들어가자 투명한 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반도체 패키징 기판으로 활용될 유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보였다. 유리관통전극(TGV)을 형성하고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를 내장하기 위해 구멍(cavity)을 낸 것이다.
앱솔릭스 관계자는 “유리에 MLCC를 내장할 수 있는 미세한 공간을 만들어야 해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MLCC 등 수동소자를 실장한 유리 기판은 절연층을 쌓는 공정을 거친다. '빌드업 필름'이 절연소재로 활용된다. 적층된 기판 위에 디지털 노광공정과 식각공정을 통해 회로를 형성한다. 앱솔릭스 관계자는 “표면이 평탄한 유리에 2㎛ 이하 배선 폭을 구현할 수 있다”며 “플라스틱 소재 인쇄회로기판(PCB)보다 절반 이상 얇다”고 강조했다.
도금공정까지 마친 글라스 기판은 구릿빛을 보였다. 유닛별 분할하는 작업과 범프로 칩과 연결하면 패키징 기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앱솔릭스 관계자는 “핵심 소재만 유리로 사용했을 뿐 일반 패키징 공정과 호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할된 유닛은 사람 손에 닿아도 문제가 없도록 측면 가공공법을 거친다.
구미 앱솔릭스 R&D센터는 지난해 7월 설립됐다. SKC가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글라스기판 사업을 검토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해외업체와 인력이 오고 가며 실현 가능성을 따졌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동이 여의치 않자 구미에 R&D 거점을 마련하게 됐다. 이어 지난해 11월 SKC 글라스 기판 자회사 앱솔릭스가 정식 출범했다.
앱솔릭스 관계자는 “태양광·디스플레이 산업이 활성화돼 유리 취급 업체가 많은 구미를 R&D 기지로 택했다”고 밝혔다. 국내외 10개 이상 업체가 참여해 글라스 기판 개발과 양산 전 고객승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라스 기판 제작에 필요한 10여개 설비를 갖췄다.
유리가 반도체 패키징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이유는 내열성이다. 앱솔릭스 관계자는 “기존 PCB 기판에 활용되는 플라스틱 소재는 200도 이상 노광공정만 거쳐도 휨 현상이 발생해 균일한 범프 실장이 어려웠다”며 “평평한 유리를 통해 안정성을 높였다”고 소개했다.
2㎛ 이하 배선 폭 구현도 강점이다. 현재 기판업계가 10㎛대 배선 폭을 도입한 데 비해 비해 획기적으로 얇다. MLCC를 내장함으로써 코어 기판 두께 역시 0.7㎜에 불과하다. 기존 반도체 기판은 실리콘 인터포저라는 중간기판을 두고 반도체 칩과 연결해야 했다.
앱솔릭스는 글라스 기판이 고성능컴퓨팅(HPC)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반도체 업계는 미세공정으로 인한 성능 개선이 한계에 다다르자 이종집적 패키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수동소자를 내장한 글라스 기판은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칩을 집적할 수 있다. 전력사용량 역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앱솔릭스는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에 1만2000㎡ 규모 글라스 기판 공장을 착공했다. 약 2억4000만달러(약 3090억원)를 투자해 2024년 연 4만8000장 생산능력을 확보한다. 앱솔릭스는 3억6000만달러(약 4640억원)를 추가 투자해 7만2000㎡ 규모로 증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앱솔릭스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우주산업 등 글라스 기판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며 “상용화를 위한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능컴퓨팅(HPC)용 반도체 패키징 시장 전망
자료 : 욜 디벨롭먼트
구미(경북)=
송윤섭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