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소재부품기술개발 사업 예산은 9300억원대로 지난해보다 11% 늘어나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핵심 전략기술은 기존 100개에서 150개로 확대됐다. 그러나 해외 경쟁국의 지원 규모를 고려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제조 2025 반도체 전략으로 반도체 설계 수준 향상, 핵심 칩 자급화, 고집적 패키징 기술 개발 등을 제시했다. 이어 10년간 약 500억달러 규모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첨단반도체 소재에 대해선 2025년까지 국산화율 30% 목표를 세웠다. 핵심소재 기술력 열위를 인정하고 적극 투자에 나선 것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아직 10%에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양쯔메모리(YMTC)가 지난해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 계획을 밝히고 SMIC가 7나노 공정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등 중국 반도체 산업은 기존 선도국가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소재시장 점유율 56%를 기록 중인 일본 역시 후발주자와 격차를 벌리기 위해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021년 6월 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을 유치해 첨단반도체 제조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강점인 장비, 소재기술을 전략자산으로 삼은 것이 골자다.
지난해 6월에는 TSMC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공동 연구하는 스쿠바시 R&D 센터가 가동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스쿠바시 센터에 190억엔(약 1810억원)을 투입했다. TSMC 쿠마모토 공장 건립에도 5000억엔(약 4조7600억원)을 지원한다. 지난해 말 일본 반도체 합작사 래피더스의 2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에는 약 6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정부 주도 지원과 기술연대가 이뤄지는 것이다.
패키징 강국 대만 역시 R&D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 정부가 발의한 산업혁신법 개정안에는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R&D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투자 세액공제율이 8%인 것과 대비된다.
미국 역시 첨단 칩 제조 시설에 필수적인 장비, 자산의 구매 건설, 제조 등에 대해 25% 세금을 공제하며 자국 내 공장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기술 주도권 확보와 혁신을 위해 '범유럽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마련하고 430억유로(약 58조1200억원) 규모 공공·민간투자가 이뤄진다.
한국 역시 2023년 소재부품기술개발 사업 예산이 11% 증액되고, 전략핵심소재자립화기술개발 예산은 1864억원으로 22억원(1.1%) 늘어났다. 하지만 경쟁국가의 투자나 지원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 중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신규과제와 예산 모두 전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반도체 분야 신규과제 개수와 예산은 2021년 각각 57개, 364억원에서 지난해 30개와 86억원으로 감소했다. 디스플레이 분야 역시 신규과제수는 61개에서 23개로, 예산은 448억원에서 107억원으로 축소됐다.
산기평 관계자는 “기존 과제 수행 예산이 늘어나며 신규과제가 다소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소부장 과제가 줄고 있다”며 “국가 핵심산업 경쟁력과 좌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매출 대비 R&D 비율은 8.1%를 기록했다. 주요 국가 중 최하위였다.
송윤섭기자 sy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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