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라고 해서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바이오 등 혁신 신기술을 모두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혁신 신기술을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개발한 경우가 훨씬 많다. 구글도 AI 기술에 관심이 있었으나 자체 개발 능력이 부족해서 딥마인드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했고, 스마트 모바일 운용체계(OS)에 관심이 있었지만 자체 개발 능력이 부족해서 안드로이드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구글이 만약 자체적으로 AI나 스마트 모바일 OS를 개발하려고 했다면 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정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모두 마찬가지다. 중국의 플랫폼 대기업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도 스타트업 인수로 혁신 신기술을 확보해 왔다. 현대자동차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로봇 모빌리티 기술을 확보했다. 이러한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는 이른바 엑시트(Exit), 즉 벤처투자자의 스타트업 투자 회수를 촉진함으로써 벤처투자자가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는 이전보다 혁신적인 스타트업 창업을 촉진함으로써 경제 전반에 걸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긍정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럼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20년부터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를 '킬러 인수'라고 하면서 공정거래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겠다고 한다.
원래 '킬러 인수'(Killer Acquisitions)라는 용어는 2018년 3명의 경제·경영학자 공저 논문 제목으로, 제목이 특이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제약업계에서 스타트업이 브랜드 제약업체에 인수된 후 신약 후보 물질이 폐기된 이유는 브랜드 기업이 미래 경쟁자인 스타트업을 미리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되며, IT 분야에서도 구글 등 빅테크의 스타트업 인수가 많기 때문에 미래 경쟁자인 스타트업을 미리 제거하기 위한 킬러 인수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킬러 인수 논문은 스타트업의 신약 후보 물질이 최종 단계에서 실패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사실을 도외시했고, 그들이 주장한 킬러 인수와 전혀 무관한 사례를 킬러 인수라고 함으로써 현실에 킬러 인수가 있는 것처럼 오도했다. 미국에서 일부 법학자와 정치인들은 킬러인수론을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에 적용해 이들 빅테크가 스타트업 인수로 미래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면서 부당하게 성장해 왔기 때문에 스타트업 인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서구권 언론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도 킬러인수론이 그대로 소개됐다. 킬러인수론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창업 및 투자의 이유가 구글 등 빅테크와 먼 미래에 직접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적정 단계에서 인수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킬러인수론을 한국 공정위가 추종해서 한국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를 엄격하게 규율하겠다는 실정이다.
실제로 2020년 공정위 주도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규제를 위한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에 더해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지침을 개정해서 플랫폼 인수합병(M&A)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런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공정위는 공정 경쟁과 소비자 후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변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규제를 강화할수록 우리나라 IT 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여기에 누가 책임질지는 의문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inyul_ju@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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