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만이 해결책인가

전성민 벤처창업학회 회장·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전성민 벤처창업학회 회장·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를 법적으로 공개하는 내용을 포함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의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반대의견으로 게임업계의 자율규제가 잘되고 있는 가운데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산업에 피해가 날 수 있고, 해외 게임사와 비교해 역차별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이용자가 일정 금액을 투입하고 무작위적·우연적 확률에 따라 얻게 되는 게임 아이템을 지칭한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은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 판매는 콘텐츠 유료화를 위한 혁신적인 사업모델이었다.

많은 게임 이용자가 '게임은 공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이템 획득에 돈을 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업모델을 장착한 한국 게임은 잇달아 수출되며 한국 콘텐츠산업의 효자 종목이 됐다. 게임 개발자 출신 창업가도 국내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을 얻기 위해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돈을 쓰게 되면서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사회문제가 떠올랐다. 돈을 써도 확정적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용자 불만은 쌓여 갔다. 게임회사도 매출을 더 많이 올리기 위해 업데이트하면서 이용자가 새로운 아이템을 얻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도록 게임을 디자인했다.

결국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는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으로 발표되는 등 정치적으로 이슈화됐다. 게임산업 관련 규제도 다시 강화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2015년부터 준비하고 확률 공개를 강화해 온 자율규제냐 법으로 확률 공개를 강제화해야 한다는 법적 규제냐는 주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법적 규제를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게임 아이템을 온라인 판매 상품으로 취급, 청약 철회가 가능하지만 원하는 재화를 반드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거래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법적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반면에 자율규제 옹호 관점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설계 문제를 정부가 개입하기보다 소비자 불만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자율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서비스 운영에 적절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산업 진흥 측면에서는 다른 논리가 전개된다. 법적 규제 측면에서는 투명한 과금 구조 공개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자율규제 관점은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사업모델의 핵심으로 간주,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한 영업 비밀로 본다. 법·제도에 따른 공개 의무화가 게임산업계의 창의성이나 고유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트렌드 변화가 빠른 게임산업에 법적 규제 도입에 따른 역동성·성장 저해도 우려한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 도입된 어설픈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는 자율규제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단순 확률 공개에만 그칠 우려가 크다. 자율규제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면 시장과 정부가 함께 규제하는 '공동 규제'로 유도하는 노력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 곧바로 법에 기초한 규제를 한다면 오랫동안 전문가 참여로 구축해 온 자율규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최근 게임 트렌드를 보면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변형된 사업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용자 보호를 위해 빠르게 확률공개 관리체계가 따라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으로는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심사를 해보면 확률정보를 표시해야 할 콘텐츠인지 모호한 경우도 많다. 확률 공개 정보를 경찰이나 검찰이 판단하는 건 더욱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장기간의 수사·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확률이 공개되더라도 이용자 보호 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다.

해외 게임사 확률정보 공개에도 자율규제가 더 효과적이다. 해외에 서버를 둔 외국 게임사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법적 규제가 국내 게임사에만 적용될 공산이 크다. 현재 자율규제 체제에서는 해외 게임사에 확률정보 공개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주기적으로 안내, 절반 이상의 해외 게임이 자율규제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은 경제·사회·법 제도가 뒷받침될 때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이 국내에 도입된 지 25년, 사반세기가 흐른 이때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적절한 규제 정책 방향은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전성민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smjeon@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