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2일 서울에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2차 청문회가 열렸다. 서울시는 2022년 8월 1차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나 HDC현산의 추가 소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청문회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내용을 듣고 그에 대하여 물어 보는 모임. 주로 국가 기관에서 입법 및 행정상의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이해관계인이나 제3자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연다'라고 돼 있다.
HDC현산에 대한 청문회 역시 같은 해 1월 아파트 신축 공사 당시에 법을 위반했는지를 묻고 소명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청문회의 개요, 일정, 장소, 위원 명단 등 세부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졌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 경제적인 피해도 컸다. 입주 예정자들은 보금자리를 잃었다. 상인들도 영업장을 상실했다. 많은 이의 생계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원인은 단순했다. HDC현산의 '부실시공'이 직접적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는 3월 14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날 발표를 통해 “시공사가 바닥 시공방법과 지지방식을 애초 설계도와 다르게 임의로 변경했다”면서 “가설 지지대를 제대로 쓰지 않고 불량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붕괴를 유발했다”고 공개했다.
광주경찰청도 12월 14일 수사를 마무리하며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진 HDC현산의 과실 책임 등을 이유로 비위 연루자들을 검찰로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수습은 진행형이다. 우선 HDC현산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HDC현산의 무책임은 사건 직후부터 드러났다. 사고 직후 붕괴 잔해물 제거 등 수습을 늑장 진행했다. 이로 말미암아 본격적인 수색작업도 늦춰졌다.
이후에는 공정을 독촉하지 않았다는 책임 회피성 발언도 있었고, 대형 로펌을 선임해서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또 이보다 앞선 10월 필자가 국정감사에서 HDC현산의 책임을 묻고 입주 예정자들과 함께 주거지원 협약을 끌어내기 전까지 입주 예정 피해자들은 압박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분양권이 있어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고 전월세 계약도 만료됨으로써 벼랑 끝에 섰지만 오히려 일방적인 주거지원안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았다.
행정기관의 대처도 미온적이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해당 사건 관련 행정 처분 권한은 서울시에 있다.
국토교통부는 서울시에 건설사고조사위원회 보고서를 첨부한 엄중 처분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고용노동부 역시 안전보건조치 위반 사실 확인 내용을 담은 영업정지 요청 공문을 송부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11개월, 국토부와 노동부가 공문을 보낸 지 9개월여가 지났지만 서울시는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당시 서울시는 신속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6개월 이내' 등록말소 등을 포함한 강력한 처분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이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청문회 역시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청문회가 자칫 대형 건설사 봐주기라는 요식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책임 회피와 처분자의 소극적 대처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개적인 청문회가 필요한데 어떤 이유에서건 청문회를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점은 떨떠름하다.
광주 학동 참사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HDC현산은 지난해 광주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 현장에서 건물 붕괴로 시민 9명이 숨지는 사고를 일으켰다. 하지만 시공능력평가 등급은 단 한 단계 하락에 그쳤다.
현재 시공능력평가에 반영되는 사고사망 비율 산출식은 상시근로자 수 대비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한다. 자연스레 상시근로자가 많은 대기업에 유리한 구조다. HDC현산은 이러한 평가 기준 덕분에 학동 참사 사고를 일으키고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러한 평가 방식으로는 중대 재해를 줄이기는커녕 건설 현장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
사업자 등록관청이 행정처분권을 갖는 현행법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 두 차례의 사고는 서울과 거리가 떨어진 광주에서 일어난 사고다. 그러나 서울시가 등록관청인 탓에 해당 사업자에 대한 처분권이 서울시에 있다.
사법부 역시 대기업에 관대했다. 광주 학동 참사 책임자에 대한 1심 재판 결과 HDC현산 관계자들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하청·재하청 관계자 등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형적으로 '꼬리 자르기'식 판결이다.
필자는 이러한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사고발생 소재지의 시·도지사에게도 행정권을 부여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서울시가 HDC현산에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각 부처의 권고, 경찰의 수사 결과대로 HDC현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가벼운 솜방망이 처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적 공분을 피하고 안전과 관련한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관련자들에게 무거운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에 대한 무감각, 우리의 무관심이 '원죄'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hana-king@hanmail.net
<필자>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 총선 광주북구갑 지역구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원내 대변인과 이재명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하는 등 차세대 민주당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체득했고, 가치 시현을 위해 노동운동과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2010년 제6대 광주시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재선됐다. 문재인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소통기획관·대변인을 지냈으며, 국가균형발전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선 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 원내대변인과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