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7〉비전이 이끄는 혁신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7〉비전이 이끄는 혁신

C-스위트(C-suite). 일상에선 흔히 쓰지 않지만 실상 비즈니스 범용어이다. C는 기업의 최고위 임원을 의미하는 치프(Chief) 또는 이들로 구성된 C레벨을 통칭한다. 이들의 역할과 기능 가운데 다른 직급과 다른 건 대개 두 가지다. 조직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형성하고, 이것을 실현할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이다.

혁신에서 C레벨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역할이란 게 뭔지는 모호해 보인다. 대개 이들이 하는 일이란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 또는 자신의 경영철학이라는 짧은 구호를 만드는 정도라는 생각도 든다.

이들의 슬로건과 경영철학이란 게 혁신에 쓸모가 있을까. 샤프라는 이름의 기업이 있다. 이건 우리에게 샤프펜슬이라는 추억을 불러들이게 한다. 사실 이 둘은 한 가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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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카와 도쿠지는 1912년 일본 도쿄에 금속공방을 연다. 그는 견습생 시절에 구멍 없이 조일 수 있는 벨트 버클을 착안하고 얼마 후 자신의 공방을 열게 된다. 그리고 1915년에 거의 최초의 기계식 연필인 에버레디 샤프(Ever-Ready Sharp)를 개발하고, 이건 샤프(Sharp Corporation)의 진정한 기원이 된다.

하야카와는 평소에 “다른 기업이 모방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라”고 주문했고, 이건 기술과 혁신의 샤프라는 목표가 됐다. 그런 탓일까. 일본 최초의 검파기 라디오, TV,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태양전지 등대, 트랜지스터 계산기를 내놓는다.

샤프는 이즈음 전자계산기에 눈을 뜨고 있었다. 핵심 기술은 두 가지였다. 액정표시장치(LCD)와 금속 산화막 반도체였다. 경영진은 이것에서 광전자공학(optoelectronics)이라는 표제어를 제시한다. 이것은 전략과 개발 방향을 명시하는 지침이 된다.

마치 이 지시문을 따르는 듯 샤프는 이들 두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신제품을 만들어 낸다. 전자수첩, LCD 프로젝션, 광범위한 범주의 맞춤형 집적회로 등이다. 창업자의 기술과 혁신이라는 사훈은 이렇게 확장되고, 샤프는 최고 혁신기업 반열에 오른다.

한때의 NEC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NEC 최고 경영진은 회사의 지식 기반을 묶어 내는 몇 가지 핵심 기술을 분류해 낸다. 그리고 C&C(컴퓨터·통신)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는 NEC를 이끌었다. 우리에겐 화왕(花王)이란 브랜드로 기억되는 카오(KAO)도 이 사례의 하나다. 얼굴과 발음이 같아서 화왕이란 비누를 출시한 이 기업이 찾은 '표면활성과학'이라고 한 문구는 비누와 세제에서 화장품, 플로피 디스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핵심 지식으로부터 파생된 제품군으로 다각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간다.

당신이 C-스위트 구성원이라면 해야 할 일은 뭘까. 매일 많은 일을 하고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손을 들어서 가리키는 것이리다. 이로써 구성원은 방향 감각을 발휘하고, 지식을 쌓고, 자원을 배분하는 등 모든 것의 기준이 될 문화가 형성된다.

당신이 뭔가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진정 비즈니스를 감싸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 결과 당신이 기대할 것은 이것을 위한 헌신일 것이다. 내일 사무실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없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혹시 사옥의 높은 층에 사무실을 둔 누군가의 부재 탓은 아닌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