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분야를 규정하는 용어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디어 연구자 입장에서 필자는 2020년부터 지금까지 미디어 생태계를 스트리밍 생태계라고 규정했다.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해가 지날 때마다 양상이 판이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사람에 따라 다른 규정이 가능하겠지만 스트리밍 생태계라는 용어의 함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미디어 생태계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스트리밍 생태계에서는 OTT가 변화를 주도해 왔다.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이 OTT 시장에 뛰어들었고, 아마존이나 쿠팡과 같이 미디어와 별다른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사업자도 OTT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로나19라는 전환기를 맞이해서 OTT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는 2023년 전산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디어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단기간에 큰 폭으로 성장한 OTT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그 여파는 더 클 수도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 OTT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 가장 버거운 요소는 콘텐츠 수급 비용 감당이다. K-콘텐츠는 미디어 산업의 최강국이자 OTT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김은숙 극본,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는 공개된 직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글로벌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K-콘텐츠의 이 같은 선전은 이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 때문에 제작비는 국내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상승했다.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회당 1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감당해야 한다.
국내 OTT 사업자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해 가며 가입자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적자다. 티빙은 2021년 760억원이 넘는 적자를 감당해야 했고, 웨이브는 55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지난해에는 더 큰 적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국내 OTT 사업자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투자해야 하는데 가입자 증가가 투자한 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OTT 시장 특성상 새로운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하면 가입자 이탈로 이어지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올해에는 제작비 등을 고려할 때 드라마보다 예능과 리얼리티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자체등급분류제도 도입과 맞물려 선정성 심화 우려도 나오고 있다. K-미디어 산업이 지닌 가장 큰 힘은 이용자의 높은 수준이다. 자극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감정의 구조를 마음의 구조로 바꾸어 얘기하면 '환승연애'와 같이 시대정신의 자장 안에서 공동체에 있는 마음의 구조를 잘 포착해 낸 콘텐츠만이 이용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국내 이용자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사업자에게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디어 시장은 많은 고용이 이뤄지는 분야이고 타 산업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큰 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콘텐츠 산업 취업유발 효과는 70만명을 넘어섰고, 서비스업 생산유발 효과는 20조원을 넘었다. 국내 콘텐츠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OTT 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 글로벌화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OTT에 대한 지원 규모 확대, 세액공제, 재제작 지원 등 현지화 지원과 같은 현안부터 국내 OTT 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투자는 사업가가 하는 것이지만 해당 분야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우려 속에서 시작되는 2023년이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nch020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