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은 혼돈과 파란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도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전환점을 맞았다. 박 대통령 서거 이튿날인 1979년 10월 27일 최규하 국무총리가 헌법 제48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했다. 권력에 공백은 없었다. 최 대행은 이날 국가비상시국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국가 비상시국에 다 함께 하나로 뭉쳐 국가 위기를 의연하게 극복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그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장충체육관에서 재적 대의원 2560명 가운데 2549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최규하 권한대행을 1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한국 최초의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자 제4 공화국 탄생이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경성제1고보(현 경기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수료했다. 광복 후 서울대 사범대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군정에 발탁됐고, 정부 수립 후 농림부 양정과장을 거쳐 외무부로 옮겨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외무부 통상국장, 주일 대표부 공사, 외무차관, 주말레이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외무장관으로 일하고 유엔총회 수석대표, 대통령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거쳐 1976년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그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다음으로 영어에 능통한 대통령으로 꼽혔다. 그는 30년 공직 생활을 근검절약하고 청렴하게 생활했다. 업무에는 꼼꼼하고 신중했지만 온후한 성품 소유자였다.
새 정부 출범 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조각(組閣)이었다. 그해 12월 7일. 신현확 부총리를 비롯한 전 국무위원은 이날 오후 4시 국무회의를 열고 최 대통령에게 사표를 일괄 제출했다. 이후 조각은 정·관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부처마다 후임 장관 하마평이 무수히 나돌았지만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자천 타천 인사들이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다. 12월 13일. 최 대통령은 공석인 국무총리에 신현확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 임명했다. 신 총리는 최연소 부흥부 장관(현 국토교통부)과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현 보건복지부)을 역임한 소신파였다.
이튿날인 12월 14일. 최규하 대통령은 신현확 국무총리 제청을 받아들여 이날 오후 새 조각을 발표했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는 이한빈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을 임명하는 등 20개 부처 가운데 18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고 2명은 유임시켰다. 이한빈 부총리는 광복 이후 첫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한국인 첫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이후 재무부 예산국장과 정무차관을 지냈고, 주스위스대사를 거쳐 학계로 옮겨 인하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과학기술처 장관에는 성좌경 한국화학연구소장(현 한국화학연구원)을 발탁했다. 최종완 과학기술처 장관은 건설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기원 청와대 대변인은 각료 명단을 발표한 뒤 “이번 조각은 민심을 쇄신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앞으로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능력 있는 새 인물을 발탁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성좌경 신임 과학기술처 장관은 1942년 일본 도쿄공업대학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공업연구소(현 국가기술표준원) 연구관을 시작으로 경성공업전문학교 교수,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공대 교수, 원자력연구소장, 원자력청장, 인하대 초대 총장, 한국화학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최 대통령은 이튿날인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어 장관들에게 다과를 베풀고 국정 안정에 주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성 장관은 이날 오후 과학기술처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치르고 업무를 시작했다. 성 장관은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자신의 포부도 밝혔다. 성 장관은 “과학기술 행정은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안목이 필요하다”면서 “기업과 대학, 각 분야 연구소 등을 비롯한 과학기술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특히 연구지원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이제 과학기술은 경제 발전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사회 발전과 국민 복지 등 사회 각 분야와 연관이 있으므로 과학행정 다양화를 통해 에너지와 자원, 환경문제에 관심을 좀 더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12월 21일. 최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장충체육관에서 취임식을 치렀다. 이날 취임식에는 3부 요인과 주한 외교사절 등 3000여명이 참석해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했다. 최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통해 “나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에 노력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말했다.
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국정 기본목표를 국가 안정 보장을 공고히 하고 사회안정과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하며 국민 생활 안정,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정치 발전을 추진해서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980년 새해를 맞아 최 대통령은 각 부처 연두순시에 나섰다. 1월 25일. 최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과학기술처를 연두순시하고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성좌경 과학기술처 장관은 새해 업무계획을 통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SW) 등 지식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성 장관은 “부가가치가 큰 컴퓨터와 SW 등 지식산업을 1980년대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면서 “기술용역 수출은 지난해 7600만달러에서 1985년까지 6억달러 이상으로 늘리고 340만달러에 불과한 SW 수출도 1985년까지 1억달러로 늘리기 위해 종합적인 육성 계획과 수출 진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올해부터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특정연구기관과 한국과학원(현 KAIST) 분원이 들어설 대덕연구단지 내 동부지역 개발을 시작하겠다”면서 “1980년대 한국경제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선진복지 국가건설을 이룩하기 위해 과학기술 장기계획 수립과 자원 에너지, 원자력 기술개발, 산업기술 보급, 과학기술인 양성, 국제기술 협력 강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최 대통령은 업무보고 후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민간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관계 부처와 협의해 이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최 대통령은 “대덕연구소 등 많은 연구소에 대한 관리 운영 효율화 대책을 강구하고 연구소 간 상호 협조로 중복연구가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최 대통령은 또 “우리가 연탄을 오래 사용했지만 아직도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많은 만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해결 방안을 강구하라”고 강조했다.
최 대통령은 “우리나라 표준시보가 조금씩 다르다”면서 “전화를 걸면 즉시 표준 시각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은 후 광섬유 제조와 응융기술 개발 전시품을 돌아봤다.
과학기술처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해 주요 업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원국제 협력: 올해부터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을 강화한다. △사회복지 기술개발: 공해방지·자연보전 및 도시폐기물 처리 등 환경보호, 식품 보건 의료 및 위생 환경 등 국민보건, 자원절약 표준주택 농촌환경 등에 대한 연구를 집중 지원한다. △대덕연구단지 건설: 한국과학원 분원을 비롯해 특정 연구기관이 입주할 단지 내 동부지역 개발에 본격 착수한다. △민간 연구소 설립 지원과 육성: 민간연구소 설립을 적극 권장, 현재 19개인 민간연구소를 앞으로 38개로 늘린다.
과학기술처는 새해를 맞아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특히 컴퓨터와 SW 등 지식산업을 새로운 수출전략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미래를 내다본 포석이었다. 그러나 정국은 갈수록 불안정하고 혼란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