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과학 교육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다

[사이언스온고지신]과학 교육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다

겨울이 되면 소외계층, 사회배려계층이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누구나 좋은 일을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고, 새해를 시작하는 힘찬 기운을 담아 진심어린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싶어진다.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근 다양한 나눔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찾아가는 과학관은 도서 산간지역 학생들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수어를 사용하는 농아인을 위해 과학 해설 프로그램(국립과천과학관)을 만들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등 8개 기관과 목소리 기부를 통한 과학책 오디오북도 제작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도서 산간지역 학생들은 과학관 프로그램을 통한 간접 체험이 아닌 직접 과학관을 가보고 싶어하지는 않을까, 수어를 모르는 청각장애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과학을 접할까,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은 어려운 과학책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물론 과학용어 수어 표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표현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청각장애인 88%는 구어를 주 언어로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비장애인들조차 어렵게 느끼는 과학책을 음성으로만 듣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모두를 위한 과학'이라는 좋은 뜻으로 준비되는 나눔 활동이 진정한 수혜자 중심 활동으로 계획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태양우주환경그룹에서는 2019년부터 태양 흑점 망원경을 이용한 교육나눔 프로그램 '유니버설 우주'를 진행하고 있다. 고등학생 봉사자를 모집해 사전 교육하고, 사회배려계층 어린이들을 초대해 즐거운 과학 놀이를 한다.

특히 이번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기관 중 최초로 보청보장구를 사용하는 청각장애 고등학생들을 봉사자로 초대해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교육한 후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청각장애 동생들에게 직접 교육을 제공했다.

보통 보청보장구를 착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주로 구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언어재활과 치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하물며 비장애인들도 어려워하는 과학 분야 접근은 더욱 어려웠을 터. 그러므로 유니버설 우주는 수혜자 입장에서 과연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자 했다.

이번 겨울에는 시각장애인과 활동도 마련했다.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주변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주는 교재와 교구가 부족하다. 예를들어 태양-지구-달로 이뤄진 입체 삼구의는 시각장애인들의 촉감과 연상 훈련에 활용되는 교구다. 세 가지 천체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간단하고 명확한 정보를 가진 입체 삼구의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교육에도 적극 활용된다.

사실 처음부터 함께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교재와 교구가 개발됐더라면 공평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문에 '모두를 위한 과학'의 나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혜자 이해에 이어 처음부터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과학 교육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을 대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문화가 다르더라도, 부모 보호를 받지 못하더라도, 신체·정신적으로 다른 점이 있더라도 아이들은 또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꿈을 꾼다. 어려운 과학은 어려워하고 재미있는 과학은 신나게 즐긴다. 그러므로 원하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나눔을 준비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실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배려는 배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정애 한국천문연구원 박사 jalee@ka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