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병법서로 평가받는 손자병법의 첫 번째 편인 시계(始計)에는 장수의 다섯 가지 덕목으로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이 제시돼 있다.
비단 전장의 장수뿐 아니라 현대사회 리더, 특히 경영자도 곱씹어야 할 화두다.
여기서 지는 전문성, 신은 고객과의 신뢰, 인은 직원들과의 소통, 용은 사업 추진력, 엄은 정도경영과 같이 각각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다섯 가지 덕목을 다 갖춘 리더야말로 최고 리더가 틀림없겠지만 이런 리더를 찾는 것도 그만큼 쉽지 않다.
차기 대표이사 공모를 진행한 KT에 18명의 외부 인사가 지원했다.
다수의 기업인 출신 이외에도 전직 장·차관, 교수, 정부 자문위원 등 면면도 다양하다.
KT 내부 후보자까지 합치면 30명이 넘는 인물을 심사해야 한다. 이전에는 이사회 내 지배구조위원회에서 맡던 역할인데 외부 인선자문단에 상당 부분을 맡겨서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 KT는 TV에서나 볼법한 대국민 오디션 같은 공모 절차를 밟고 있을까.
KT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두 번이나 구현모 대표를 차기 대표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애초에는 KT 정관과 이사회 규정에 따라 구 대표를 연임 우선으로 심사해서 적격 판정하고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그런데 현직자 우선 심사가 셀프 연임 관행으로 지적받자 구 대표가 경선을 제안하고 이사회가 이를 수용, 사내외 27명의 후보자와 경쟁해서 12월 말 재차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나 KT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과 여당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올 2월에 다시 백지화하고 공모를 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외부 인선자문단 운영, 사내 이사진의 관여 배제, 지원자 명단 및 단계별 결과의 투명한 공개를 공표했다.
외부 의견을 수용해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그런데 공모 지원 결과를 보면 이런 선의가 과연 최적의 결과로 이어졌는지 의구심이 든다. 지원자 타이틀은 화려하지만 KT 사업 영역인 정보기술(IT)과 통신, 특히 최신 디지털 트렌드에 정통한지와 함께 과거 기업경영을 통한 경영자로서의 성과를 검증받을 수 있는지가 모호한 인사가 다수 눈에 띈다.
이러다 보니, 지원자 역량보다 후원과 인맥 등 그 배경에 시선이 쏠리며 온갖 억측을 생산하고 있다.
투자자와 자본시장도 우려를 표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경영 불확실성을 근거로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하고, 국민연금이 개입한 이후 KT 주가는 지난해 12월 구 대표가 최종 후보로 처음 확정된 시점 대비 공모 마감일에 13% 하락했다. 주주의 최대 요구는 주가 상승과 고배당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런 혼란 속에 과연 최고 리더를 선정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필자는 2015년부터 3년 동안 KT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현재 KT 주주다. 법조인으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KT 경영활동을 살피고 이사회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때로는 나의 소신과 전문성에 의거해서 현안 개선을 요구하고, 상정 안건에 반대 의견을 던지기도 했다. 당연히 이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이사회 독립성과 전문성은 글로벌 트렌드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지배구조(G) 분야에서 핵심으로 평가된다. 현 KT 이사회 구성원도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전문가이며, 자신의 결정에 책임과 명예를 걸 수 있는 인사들로 알고 있다. KT의 대표 공개경쟁은 진행형이고, 이제 공정한 심사와 평가만 남아 있다. 외부 인선자문단은 자문단대로 이사회는 이사회대로 원칙과 소신에 따라 역할을 다할 것으로 믿으며, 그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KT는 민영화된 지 20여 년이 지났고,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니다. 상법에서 규정하는 주식회사다. 업무 내용 가운데 통신 분야가 포함돼 있다 해서 공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이 없는 회사도 아니다. 수많은 국내외 주주들이 주인이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물론 유관 기관과 정치권까지 KT의 차기 대표가 주주와 임직원, 협력사 등 KT 이해관계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고의 리더로 확정될 수 있도록 지켜봐 줘야 할 것이다.
정동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전 KT 사외이사) chungdw82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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