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기술패권 확보 핵심 열쇠, 광융합기술

유네스코는 빛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된 이래 10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지난 2015년을 '세계 빛의 해'로 지정한 바 있다. '20세기는 전자(電子) 시대, 21세기는 광자(光子) 시대'라 일러질 정도로 세계적으로 광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그동안 빛을 활용한 광기술이 인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왔고, 앞으로도 인류가 맞닥뜨릴 다양한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광기술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

[ET시론]글로벌 기술패권 확보 핵심 열쇠, 광융합기술

◇광융합기술 역할 재조명

지금 우리는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포스트 코로나 등에 따른 경제위기의 대격변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기술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외교·안보를 좌우하는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전략기술을 구체화하고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주력산업의 성장을 돕는 '요소기술'로만 인식돼 온 광기술은 이제 타 기술과의 융합으로 적용 범위가 크게 확대되면서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기술주권 확립을 위한 '핵심기술'로 재조명받고 있다.

◇광융합기술 정의 및 적용 범위

광기술 하면 가장 먼저 조명이나 디스플레이 산업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광기술 적용 범위는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간된 광융합기술 종합발전계획(2019)에 따르면 전통 '광기술'은 △빛을 생성(발광)하는 발광다이오드(LED), 레이저 △빛을 검출(수광)하는 광센서, 솔라셀 △빛을 제어(집광)하는 광학렌즈, 필터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기술은 광반도체, 디스플레이, 조명, 라이다센서, 광통신기기, 가공·의료 레이저, 광계측센서, 태양광 시스템, 카메라모듈,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분야에 활용되면서 정보통신·전자·의료 등 주력산업의 발전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 '광융합기술'은 다양한 타 산업과 결합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신제품 개발 및 성능을 고도화하고, 사회·산업적 난제 해결을 위한 핵심기술로서 그 중요성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공장, 미래자동차, 드론·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산업'과 스마트시티·바이오헬스·메타버스 등 '일상생활', 에너지·국방·안전·우주·양자 등 분야까지 적용 범위가 매우 넓게 확장하고 있다.

◇주요국의 광산업 관련 정책 동향

국제광전자공학회(SPIE)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광융합시장(응용 제품 및 서비스 시장 포함)은 2020년 기준 10조달러에 이르며,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2%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2010년 이후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국가 주력산업으로 광융합기술 육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 오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술 패권 시대에서 광융합기술이 국가경쟁력 부흥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국내 광산업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지역전략산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2000~2012년에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지면서 발전해 왔다. 이후 한동안 정체기를 겪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반 기술로 광융합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체계적인 기술 개발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8년 '광융합기술지원법'이 제정됐다. 이후 광산업은 광융합산업으로 확장됐으며, 지역전략산업에서 국가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에 발맞춰 광융합기술 개발 및 기반 조성을 위한 중장기 추진계획인 '광융합기술 종합발전계획'을 2019년에 수립한 데 이어 2020년에는 한국광기술원을 '광융합기술 전문연구소'로 지정하고 광융합기술 중장기 연구개발(R&D) 로드맵(2021~2027년)을 수립하게 됐다.

◇광융합기술 선도를 위한 향후 과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관련 산·학·연 광융합기술 선도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에도 선진국과 2년 이상 기술 격차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초격차 광융합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 패권 확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거대 광융합 시장 선점을 위한 대규모 R&D 추진이 시급하다. 마이크로·나노 LED 등 차세대 광반도체·디스플레이, AR·VR 메타버스, 초절전 융합조명, 미래 모빌리티, 바이오헬스, 우주·항공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한 광융합 핵심기술의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한다.

둘째 개별 기업이 구축하기 어려운 기술 고도화에 광융합 공공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한 국내 밸류체인 강화와 기업지원 원스톱 솔루션 제공으로 해외 진출 등 신시장을 적기에 창출하고 견고한 성장을 지원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할 석·박사급 R&D 전문 인력과 중소기업 맞춤형 현장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셋째 광융합 분야의 미래 유망시장 발굴과 글로벌 시장 활성화 지원이 필요하다. 개발된 제품의 국내외 수요처 발굴과 함께 시험·인증, 테스트베드 구축 등을 통한 해외 진출까지 아우르는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술 간 융합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파괴적 혁신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 산업 분야의 난제를 광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광융합기술이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기술'로 재조명받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광융합기술이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선도 국가를 만들기 위한 '핵심 열쇠'가 되길 기대해 본다.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

〈필자〉신용진 원장은 초기 레이저 물리학을 연구한 학자로, 의광학 개념을 국내 최초로 정립했다. 고려대 물리학과, 미국 뉴욕대 대학원을 거쳐 1994년부터 조선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광특화연구센터 소장,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및 '물리학과 첨단기술' 편집위원장, 한국광학회 부회장 및 감사, 한국레이저가공학회 기술·대외협력 이사를 지냈다. 광산업육성위원회 운영위원, 국제광융합기술콘퍼런스(IOCTC) 조직위원장, 국제광산업대표자협의회(IOA) 한국대표, 국제표준화기구(ISO) 전문위원 및 한국대표, 한국광산업진흥회 운영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평가위원, 광주전략산업기획단장, 조선대 자연과학대학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