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설계 인력 유출은 열악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도 한몫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국내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 81개사를 대상으로 경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19년 기준 매출 평균은 273억원, 중위값은 32억원으로 나타났다.
중위값은 순서대로 정리했을 때 중간에 위치한 값이다. 즉 81개 업체 중 40위권에 있는 기업 매출이 32억원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이는 곧 32억원 미만 기업이 40여곳에 달한다는 의미다.
매출 평균과 중위값이 큰 차이를 보인 건 실적이 월등한 기업이 있는 반면에 그 외 다수는 저조해서다.
우리나라 팹리스는 2005~2010년만 해도 연평균 41% 성장했으나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 등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대기업 제외 시 2019년 기준 1% 미만이다. 대만(17%), 중국(1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산업연구원 조사에서 팹리스 1인당 인건비 평균은 4700만원을 기록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이 국내 수석급 엔지니어에게 제시하는 연봉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처우가 열악한 상황으로, 엔지니어로선 거절하기 쉽지 않은 제안에 노출되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국내 산업계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것으로 보인다. 자금, 정부 지원 등을 바탕으로 반도체 자립에, 특히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기술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20년 발표한 '14차 5개년 규획·2035년 비전목표'에는 집적회로(IC) 설계 등 핵심 연구 개발 강화 내용이 담겼으며,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중국 반도체 투자건수 476건 중 59.7%가 IC 설계 분야에 집중됐다. 중국은 10년간 총 55조원 규모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고 IC 설계 우수 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등 해외 인력 확보에 공격적인 영입 제안을 하는 상황으로 추측된다. 채용 사이트에는 중국계 기업인 것만 밝히고 디스플레이 반도체 설계 경력자를 구인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반도체 초강대국 전략에 '우수인재 유출 방지책'을 제시하긴 했다. 외국인 기술자와 내국인 우수인력이 국내 기업·연구소 취직할 경우 현행 5년인 소득세 50% 감면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검토'를 내놨다. 처우 자체가 소득세 감면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보다 실질적인 방안 마련은 물론, 우선 당장 인력 유출이 얼마나 되는지 현황 파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윤섭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