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술보호, 인력관리가 먼저다

“중국으로 가는 건 결과물이 나온 이후입니다. 괜찮은 제품이 개발되고 판매되면 그때 중국이든 홍콩으로 가서 상장(IPO)하는 겁니다. 중국이 저렇게 반도체 자립에 목숨 걸고 있는데 기술이 있고 실적까지 있으면 상장은 따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상장이 가시화됐을 때 가자고 하는 겁니다. 해외에서 여유 있게 살라고 이야기하면서….”

설마 했다. 경쟁국의 반도체 개발 인력 스카웃에 설마 눈에 띄도록 금방 알 수 있게 할까 싶었다. 그러나 등잔 밑은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에 회사를 세우고, 한국 엔지니어를 고용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올해 초 처음 접했다. 기자들과 2개월 남짓 심층 취재한 결과 인력을 인선해서 본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정말 과거의 얘기였다.

국내에서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Display Driver IC)을 연구개발(R&D)하고 있는 중국계 기업 3개사를 찾을 수 있었다. 모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DDI를 개발하고 있었고, 한국 반도체 기업 출신들이 연구소장 등 중요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OLED DDI는 우리나라가 세계 1등을 달리고 있는 기술이다. 중요성에 따라 국가가 관리·보호하겠다고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중국 기업이 왜 한국에 회사를 두고, 왜 한국 엔지니어를 통해 DDI를 개발하는지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OLED와 DDI는 각각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지만 한 몸과 다름없다. OLED를 작동하는 것이 DDI다. OLED가 핵심이면 DDI도 핵심이란 얘기다. 중국은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한 뒤 OLED로 발을 넓히고 있다. OLED가 고부가가치 제품이자 미래 디스플레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OLED DDI도 필요하다.

얇은 막대처럼 보이는 은색 부품이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다. (자료=삼성전자)
얇은 막대처럼 보이는 은색 부품이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다. (자료=삼성전자)

씁쓸했다. 한국 엔지니어가 중국 기업에서 일해서가 아니다. 흔히 국내 기술자의 해외 경쟁국·경쟁사 이직을 매국에 빗대 비난하는데 개인의 직업 선택과 행복 추구를 비난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논리라면 우리도 해외에서 인재를 영입해선 안 된다.

답답한 것은 왜 국내 엔지니어들을 해외에 뺏기는가였다. 파격적인 연봉과 주식 등 대우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면 그만큼 왜 대우를 못해 주는 것인지, 또 상장이 동기 부여가 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우리는 왜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인지 묻고 답을 찾으려 했다.

결론은 국내 산업의 취약한 생태계로 모아졌다. 세계 1위라고 하지만 대기업이 수직계열화해 OLED DDI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전은커녕 제대로 숨쉴 구멍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국내 시스템반도체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엔지니어들은 성장성·가능성이 엿보이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술 보호를 위해 외부로의 유출 차단에만 신경썼다. 핵심 기술자료의 국외 유출을 방지하거나 경력자의 해외 이직 움직임을 기술 유출이라는 이유로 막는 식이었다. 엔지니어들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서 출입국을 관리하겠다는 발상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직을 막을 것이 아니라 떠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기술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이 이동하면 기술도 따라 움직인다. 결국 핵심은 사람이다. 인재가 떠나가지 않는,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우선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