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AC)가 지난해 활발한 투자활동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50건 이상 투자를 단행한 AC가 5곳이나 됐고, 총 56개 AC가 두 자릿수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16일 창업기획자 전자공시에 따르면 씨엔티테크가 지난해 84건 투자를 집행하며 전체 AC 중 1위에 올랐다. 이어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62건), 블루포인트파트너스(54건), 퓨처플레이(51건), 인포뱅크(50건) 등이 50건 이상 투자를 단행했다.
AC는 극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역할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도 AC 시드투자가 출발점이다. AC가 발로 뛰면 뛸수록 진흙 속에 감춰진 진주와 같은 스타트업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다. AC가 더 많고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할수록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만큼 투자 건수는 AC의 중요한 평가지표로 통한다.
씨엔티테크는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에도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벌였다. 지난 2020년부터 3년 연속 국내 AC업계 투자실적 1위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2020년 78개 기업에 71억원을, 2021년 74개 기업에 약 91억원을 투자했다. 그간 5000개 이상 스타트업을 육성했으며 특히 푸드테크, 애그테크,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관광 등 중점 투자 분야 스타트업 300곳 이상에 투자했다.
씨엔티테크는 다른 AC와 달리 '인바운드 딜 소싱 체계'로 들어오는 딜에 맞춰 펀드를 결성한다. 특히 지난해 투자 혹한기로 인해 투자자가 지갑을 닫으면서 씨엔티테크에 투자 문의가 몰려 투자건수가 크게 늘었다. 올해 1분기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투자건수는 16건에 이른다. 혹독한 '투자 한파'가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씨엔티테크는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씨엔티테크 투자 프로세스도 여느 AC와 다르다.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아닌 톱다운(Top-Down)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가 월 평균 200건 이상 투자문의를 1차 선별하고 실사 기준에 도달한 스타트업을 11개 투자팀에 나눠 배정한다.
전 대표는 “최종적으론 지난해 104개 스타트업에 152억원을 투자했다”면서 “초기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아 특별히 심의할 건이 없어 직관으로 투자해야 하고, 투자 모수를 키워야 일정 정도 수익률도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블루포인트파너스도 지난해 스타트업 54개사에 투자하며 전체 AC 중 3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저온 플라즈마 멸균 솔루션 기업 '플라즈맵'과 장기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기업 '인벤티지랩'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포트폴리오를 배출했다.
블루포인트는 투자 혹한기에도 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저평가된 유망 스타트업을 찾기 좋은 시기라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 10년이 소프트웨어 시대였다면 향후 10년은 딥테크 시대로 내다봤다. 로봇, 배터리, AI, 정보기술(IT) 부품, 우주항공, 특수·소재 등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블루포인트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체계적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탄탄한 미들·백오피스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후속 투자 지원을 위한 심사역 네트워킹은 물론 포트폴리오 효율적 관리와 성장 가이드, 홍보 지원 등을 위한 세부 조직도 갖췄다”고 강조했다.
퓨처플레이는 지난해 51건 투자했다. 투자금액은 338억원가량이다. 지난해엔 '퓨처플레이뉴-엔터테인먼트펀드'를 결성하고 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오리지널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투자와 사업운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퓨처플레이 비즈니스 모델도 눈길을 끈다. 대기업 사내벤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과 대기업-스타트업 협업 프로그램 '테크업플러스', 강소특구 내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강소특구 액셀러레이팅', 투자 심사역 육성 프로그램인 'VC 스프린트' 등이 대표적이다.
퓨처플레이는 '트렌드 쫓기'가 아닌 펀더멘탈에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육성한다는 투자철학을 굳건히 할 방침이다. 또 커머스·플랫폼·바이오 신약 등 지난해 주춤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오형 퓨처플레이 대표는 “인프라스트럭처(사회적 생산기반) 기술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면서 “한국은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는 AI와 로봇 등 분야에서 중점적으로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임팩트 투자사 소풍벤처스는 지난해 45건 투자하며 6위에 올랐다. 소풍벤처스는 스타트업이 재무적 성과는 물론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후·환경·농식품·순환경제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분야에 중점 투자한다. 지난해엔 기후테크 스타트업 '발굴-육성-투자' 체계를 마련하고 내부 역량 강화와 가설 검증에 집중했다. 올해도 기후테크 분야와 농식품, ICT,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에 중점 투자할 예정이다.
아울러 싱가포르·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도 본격화했다.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제조 및 유통, 배터리 정기 구독 서비스 스타트업 '셀렉스'와 라오스 협동조합 기반 양계 수직계열화 '그린굿스' 등에 투자했다.
와이앤아처는 지난해 21건을 투자했다. 와이앤아처는 글로벌 투자유치 프로그램 '에이스트림(A-STREAM)'을 운영하는 등 해외진출에 특화된 글로벌 AC를 지향한다. 특히 최근 AC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벤처캐피털(VC)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운데 극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더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매쉬업엔젤스와 뉴패러다임인베스트먼트는 각각 20건과 16건 투자했다. 매쉬업엔젤스는 올해 인터넷, 모바일, 커머스, 소프트웨어, 딥테크, 웹3(Web3), 게임 등 ICT 전 분야 스타트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뉴패러다임인베는 올해 15개사에 대한 신규투자와 최대 10개사에 대한 후속투자를 통해 100억원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목표다.
뉴패러다임인베 관계자는 “모회사인 티에스인베스트먼트가 포트폴리오사의 중기 이후 투자를 맡아, 성장 단계에 맞는 스케일업 후속투자를 연속적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