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과 27일 나란히 생일을 맞는 삼성과 LG 분위기가 유독 무겁다. 복합 위기 속에서 부진한 1분기 실적이 예고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시장 침체와 함께 총수 관련 변수까지 더해져 경영 부담을 가중 시키고 있다. 삼성, LG는 부진 장기화를 대비해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 로봇, 차세대 통신 등 새 먹거리 발굴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삼성 85주년·LG 76주년 '조용한 생일'
삼성은 오는 22일 창립 85주년을 맞는다. 그룹 모태인 '삼성상회'가 세워진 날은 3월 1일이지만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1987년 3월 22일 총수에 오르며 '제2의 창업'을 선언, 이날로 창립기념일을 변경했다.
올해도 삼성은 별도 창립기념 행사를 열지 않는다. 2017년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물산 설립일로 의미를 축소, 별도 행사를 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총수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날 별도 메시지를 낼 가능성은 적다.
오는 27일은 LG 창립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가 세워진 것은 1월 5일이다. 3대 고 구본무 회장이 1995년 취임과 함께 사명을 LG로 바꾸면서 이날을 창립기념일로 새로 정했다.
LG 역시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한 생일을 보낼 전망이다. 지난해 창립 75주년을 맞아 구광모 회장이 사내 방송 영상을 통해 “더 가치 있는 미래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올해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내달 14일을 계열사 공동 휴무일로 지정, 전 직원이 쉴 수 있도록 한다.
◇간판회사 부진, 1분기 한파 예고
삼성, LG가 나란히 생일을 앞뒀지만 분위기는 무겁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간판회사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예상 매출액은 64조1990억원, 영업이익은 1조9071억원으로 추정된다. 작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7.6%, 영업이익은 86.2%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은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이다.
실적이 곤두박질친 것은 반도체 불황 탓이 크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1분기 영업손실이 3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평균판매가격(ASP) 하락과 지난해 기준 29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재고가 실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LG전자도 1분기 실적 하락이 점쳐진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전자 1분기 예상 매출액은 20조8564억원, 영업이익 1조138억원으로 나타났다. 작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2% 소폭 하락하는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46%나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전·TV 수요 둔화와 물류비·재고 부담이 실적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와 비교해 LG전자 사정은 그나마 낫다. 매출도 비교적 선방한데다 지난해 1분기 일회성 이익(특허수익)을 제외하면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4%가량 성장한 수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력 사업으로 성장한 전장사업 성장이 이어진데다 로봇 등 신규 사업 기대도 높다.
오강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장 관련 수주 확대가 지속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전장 제품 확대에 따라 차량 내 아키텍처 수요 증가로 가격과 수량의 동시 증가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전망했다.
◇핵심사업 점검·신사업 모색 사활
간판회사 실적이 심상치 않으면서 총수 움직임도 바빠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 들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등 핵심 사업장을 연이어 방문, 사업 전략을 점검했다. 삼성의 성장 발판이 됐던 영역이 주춤하면서 총수가 직접 나서 초격차 유지를 위한 해법 모색에 나선 것이다.
구광모 LG 회장도 최근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소집, 고객가치 실현 전략과 함께 침체된 시장을 되살릴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에는 LG 주요 계열사가 총집결한 'LG테크콘퍼런스'를 찾아 행사에 참석한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꿈과 미래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침체된 사업 분위기를 기술혁신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행보다.
부진 장기화를 대비한 신사업 채비도 활발하다. 지난 1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걷기 운동용 웨어러블 로봇 출시부터 다양한 로봇 사업화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회장의 발언 하루 뒤인 16일 삼성전자는 로봇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추가 매수하며 인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올해 첫 로봇 출시에 고삐를 죄며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LG전자 역시 오는 27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상 사업 목적에 '기간통신사업(5G)'과 '화장품판매업'을 추가할 예정이다. 특히 기간통신산업은 기존 로봇 사업과 결합해 5G특화망 구축 사업을 위한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장이나 물류센터에서 활용하는 자율주행 로봇과 이를 관제·제어하는 5G특화망까지 패키지로 공급, 신규 사업 모델을 마련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 LG전자를 포함한 LG 계열사 주요 공장에는 자체 개발한 로봇에 이어 5G특화망 구축도 추진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업황 부진이 지속되면서 기존 사업 돌파구 마련과 함께 새 먹거리 발굴이 더 절실해졌다”면서 “단순히 선언적인 미래 준비보다는 당장 부진을 상쇄할 새 먹거리가 필요한 만큼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