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 롤(Barrel role). 비행 기동 방법의 하나다. 교본은 이것을 종축과 횡축 모두에서 완전한 회전을 하며 원래 방향을 향하는 나선형 기동이라고 말한다. 즉 기수를 높인 채 옆으로 반 바퀴를 돌고 다시 기수를 아래로 향해서 반 바퀴를 돌아야 한다. 만일 나보다 빠른 적기를 달리 따돌릴 수 없다면 이렇게 지나치게 할 수 있다.
물론 혁신에도 여러 전략이 있다. 누구의 칼날이 더 단단한지 내려치는 방법도 있다면 허점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경쟁 기업의 실수를 찾아서 이용하라는 건 아니다. 안목이 좁거나 근시안이 놓친 사각지대와 심지어 소비자조차 생각하지 못한 착안을 해내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청량음료 시장을 한번 떠올려 보자. 이곳은 그야말로 거탑들로 즐비한 곳이다. 시장의 태반은 단지 몇몇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코카콜라, 펩시콜라, 캐드베리(Cadbury) 같은 기업의 마진율은 다른 곳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니 누구든 눈독을 들이게 된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기 전 버진 드링스(Virgin Drinks)와 코트 코퍼레이션(Cott Corporation)이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름하여 버진 콜라였다. 이 둘은 야심만만할 만했다. 코트는 월마트 자체 브랜드나 RC 콜라같이 유통업체 주문 탄산음료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강자였다. 여기에 버진 그룹의 브랜드를 가져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결국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를 넘어서지도 못하고 몇 해 후 도전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반면에 버진 콜라와 비슷한 시기에 조용히 이 시장에 도전한 제품도 있었다. 바로 레드불(Red Bull)이다. 이것만큼 배경이 흥미로운 제품도 드물다. 알려져 있기는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된 것이지만 정작 기원은 태국까지 거슬러 간다. 원래 명칭은 '붉은 가우르'(Red Gaur)였다. 가우르가 동남아시아 들소이니 레드불도 여기서 따온 셈이다.
가우르의 성품에서 기인한 탓일까. 레드불은 조용히 미국 시장에 발을 들이민다. 탄산음료 대신 에너지 음료라 칭했다. 캔 모양도 기존 콜라와는 좀 다르게 했다. 좁고 긴 원통에 용량은 콜라 캔보다 작은 245㎖였다.
처음엔 나이트클럽과 같은 곳에서 팔았다. 이렇게 이곳저곳 판매처를 늘리다가 길모퉁이 가게로 매장을 늘린다. 커다란 레드불 캔 모양을 실은 자동차를 몰고 트럭 정류장, 사무실 건물, 대학, 체육관, 건설 현장 등에 나타났다. DJ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술집이나 클럽 테이블에 빈 캔을 남겨 놓기도 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후원하고, 이들 스포츠의 열혈 팬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젠 여느 매장의 콜라 바로 옆에서 팔리고 있고,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다음으로 가치 있는 청량음료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톰 시버(Tom Seaver)는 메이저리그에서 20년을 뛴 후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투수다. 현역 시절 그의 속구는 가위 명품이었다. 타석에서 보면 공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그가 남겼다는 말 가운데 “떠오르는 속구야말로 최고 투구다”는 전설처럼 남았다.
그러나 뉴욕 양키즈에서 19승을 두 번이나 한 다른 누군가의 주무기는 싱커였다. 얼마나 낙차가 큰지 누군가는 볼링공 같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1998년 5월 뉴욕 타임스 광장에 쌓아 놓은 콜라 캔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것으로 도전을 선언한 버진 콜라보다 클럽 여기저기에다 빈 캔을 올려놓곤 하던 레드불이 더 혁신에 가깝게 보이는 건 왜일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