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2월 12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후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과학기술원을 방문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한국과학원이 통합한 과학기술원의 업무 현황을 보고받고 과학기술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행보였다.
이날 오후 3시. 전두환 대통령이 탄 검은 승용차가 경호 차량의 안내를 받아 과학기술원 본관 앞에 도착했다. 본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주천 과학기술원 원장이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 “각하, 어서 오십시오.” 전 대통령은 이 원장의 안내로 곧장 업무보고 장소인 대회의실로 입장했다. 그 뒤를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과 김경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따랐다.
전 대통령과 일행이 자리에 앉자 이주천 원장이 과학기술원 업무 현황을 보고했다. “지금부터 통합한 과학기술원의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전 대통령은 업무보고가 끝나자 먼저 기관 통합 배경에 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 과학기술처 산하 연구기관 통합은 최신 과학기술 지식과 정보를 서로 교환해서 연구기관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학기술자들의 노력과 역할에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대통령은 이어 과학기술자 우대와 병역특례, 과학기술자 복지 등 방안도 검토하라고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지시했다. “국방부 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과학기술원에 종사하는 과학자와 연구자를 비롯한 주요 산업 분야 및 각 대학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과학자·기술자 가운데 국가가 꼭 필요로 하는 우수한 과학기술자에 대해서는 기초군사 교육만 받고 병역을 마치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 검토하기 바랍니다. 전 대통령은 또 “과학기술자에게도 공무원과 같이 연금 혜택을 주는 방안, 우수과학자의 주택 마련을 위해 5년 정도 저리(低利) 분할 상환으로 아파트를 분양받도록 하는 등 과학기술자의 생활 안정과 복지 보장 방안을 함께 연구·검토하라”고 이 장관에게 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이어 “1970년대만 해도 우리는 저임금으로 해외 시장에서 경쟁했지만 이제는 저임금으로 외국과 경쟁할 시기는 지났다”면서 “앞으로는 최고 과학기술 두뇌와 첨단 기술로 국제경쟁력을 향상해야 하며, 이런 점에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은 1980년대 최우선 당면 국가과제”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앞으로 과학기술 혁신만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라면서 “연구 여건이 어렵더라도 과학기술자 여러분이 사명감을 발휘해서 세상에 없는 최신 기술과 첨단 제품을 개발,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이어 과학기술원 전산개발센터와 응용과학연구실 등 연구시설을 1시간여 동안 둘러보았다. 전 대통령은 특히 응용과학연구실의 광섬유통신 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광섬유를 이용한 전화기로 시험통화를 하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시설을 돌아본 뒤 과학기술원 구내식당에서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비롯해 과학기술원 교수, 연구자 등 75명과 다과회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 대통령은 다과회에서 “과학기술 분야 투자는 정부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과감하게 해야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서 “과학자들의 해외 연수와 필요한 경우 외국 과학자를 초빙해서 우리가 각 분야의 선진 첨단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또 “기업체에서 과학기술원으로 기술 관련 문제를 의뢰하면 성의를 다해 조언해야 기업인들이 연구기관을 자주 활용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3시간여 동안 과학기술원에 머무르면서 과학기술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전 대통령을 수행한 오명 전 과학기술 부총리(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의 회고. “전 대통령은 기억력이 비상했다. 업무보고를 하면 대충 듣는 것 같은데 나중에 말이 달라지면 '한 달 전 보고와 왜 말이 다르냐'고 정확히 지적했다. 이날도 차를 타고 가면서 대통령이 말씀해야 할 내용 9가지를 설명해 드렸다. 말을 다 끝내기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대통령이 내리면서 '그렇게 한꺼번에 이야기하면 내가 어떻게 기억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과학기술원에서 말씀하시는 걸 보니 차 안에서 말씀드린 9가지에 대해 살을 붙여 가며 하나씩 다 말씀하는 게 아닌가. 그 안에 과학기술계 숙원 사항이 다 들어있었다. 이날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과학기술처는 전 대통령의 과학기술원 시찰 후 한국과학기술원법 제정을 서둘렀다. 법을 제정해야 통합기관인 재단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다. 법 제정은 통합기관으로 가는 첫 관문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전문 29조의 한국과학기술원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를 거쳐 국보위 입법회의에 제출했다. 과학기술처는 법안 제안 이유로 '국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의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국가가 필요한 중·장기 연구개발, 국가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기초·응용연구와 산업계 연구지원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원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보위 입법회의는 그해 12월 29일 이 법안을 통과시켜 정부로 넘겼다. 정부는 그해 12월 31일 법률 제3310호로 과학기술원법을 공포했다. 법 제정으로 1966년 12월 27일 제정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법과 1970년 8월 27일 제정한 한국과학원법은 폐지했다.
과학기술원법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정부나 정부 투자기관은 과학기술원의 설립과 건설, 연구 운영에 필요한 경비·운영에 필요한 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과학기술원에 출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출연금의 교부와 사용, 기금 운용과 관리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과학기술원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매 사업연도 개시 전에 사업계획서와 예산서를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이 경우 학사에 관한 사항은 문교부 장관에게도 제출해야 한다. △과학기술원은 과학기술처 장관이 지정하는 공인회계사의 검사를 받은 매 사업연도의 세입과 세출 결산서를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학사에 관한 사항은 문교부 장관에게도 제출해야 한다. 결산서 기재 사항 가운데 국가기밀에 속하는 업무나 이와 직접 연관된 업무는 공인회계사의 회계검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과학기술처 장관은 과학기술원을 지원 육성하며, 그 업무를 조정 감독한다. △과학기술원에 박사와 전문석사, 석사과정을 둔다. 이 규정에 따라 과정별 수업·학과·교과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이 정한 바에 따라 원장이 정하고, 이를 과학기술처 장관과 문교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과학기술원에 교수·부교수·조교수를 두고, 필요한 경우 강사를 둘 수 있다. 과학기술 연구를 위해 필요한 경우 연구원을 둔다. △과학기술원은 대통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구계획서와 연구보고서를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며, 수탁계약에 의한 연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처 장관은 특정 과제의 공동연구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거나 원장에게 조치할 것을 권고할 수 있다. △과학기술원은 연구 생산성 향상과 시설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다른 연구기관이나 대학·전문단체 등과 협의해서 연구시설이나 기기를 공동 이용해야 하며, 비용은 이용 기관이 부담한다.
과학기술원은 법안 제정에 맞춰 재단법인 설립에 착수했다. 우선 5명의 설립위원을 위촉해 한국과학기술원 정관을 작성했다. 5명의 설립위원은 이한빈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최상업 서강대 교수, 이주천 원장, 백영학 과학기술처 기술심의실장, 신만교 과학기술처 진흥국장 등이었다. 이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설립자로 하는 재단법인 정관을 작성해서 그해 12월 30일 과학기술처에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 설립자인 전 대통령은 100만원을 재단에 출자했다.
과학기술원은 설립 목적으로 '국가 산업발전에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 지도자급 인재 양성과 중·장기 국책 연구개발, 국가 과학기술 능력 배양을 위한 기초·응용 연구와 다른 연구기관 산업계 등에 대한 연구 지원을 종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처의 설립 허가 조건은 두 가지였다. 정관에 있는 사업 목적과 계획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 관계 법령에 따라 발생하는 처분이나 명령을 성실히 준수할 것 등이었다.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은 한 해를 마감하는 그해 12월 31일 과학기술처 제65호로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허가장을 발급했다. 숨 가쁜 연말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