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카카오가 지난해 투자 혹한기에도 스타트업 발굴에 적극 나섰다. 양사는 스타트업 투자 전문조직인 네이버 D2SF와 카카오벤처스를 통해 총 69곳에 667억여원을 쏟아부었다. 경기 불황으로 스타트업 투자시장이 크게 위축됐음에도 신기술을 다루는 역량있는 스타트업 발굴에 전력투구한 것이다.
29일 네이버 D2SF와 카카오벤처스에 따르면 지난해 양사는 스타트업 48개사에 신규 투자를, 21개사에 후속 투자를 단행했다. 스타트업 투자 숫자로는 전년 79곳보다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 하반기 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투자 실적을 유지했다는 평가다.
투자액으로 보면 네이버 D2SF는 167억원, 카카오벤처스는 500억원 이상을 이들 스타트업에 지원했다. 스타트업당 평균 투자액은 10억원 이하로, 상당수가 시드 투자 단계에 참여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투자 늘린 카카오…FI 역할 '충실'
스타트업 투자 규모와 숫자로 보면 카카오벤처스가 네이버 D2SF보다 월등히 많았다. 카카오벤처스는 신규 31곳, 후속 투자 12곳을 포함해 총 43곳에 5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업종별로 구분했을 때 서비스 분야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각각 16곳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딥테크 7곳, 게임 4곳순으로 나타났다.
주목되는 점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투자가 확연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모바일 헬스부터 의료데이터, 전임상지원, 원격의료까지 다양한 기업이 투자를 받았다. 이는 의사 출신인 김치원 상무와 정주연 심사역을 영입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치원 상무는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장 출신으로,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 전공의로 근무한 후 컨설팅 회사 맥킨지 서울사무소에서 경영 컨설턴트를 지냈다. 정주연 심사역 역시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한 바 있다.
카카오벤처스 측은 “올해도 시장에 좋은팀이 있다면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디지털 헬스케어 뿐 아니라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를 기반으로 세상을 혁신하는 극초기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벤처스는 네이버 D2SF과 달리 앞으로도 전략적 투자자(SI)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초기 스타트업의 재무적투자자(FI)로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기여하는 역할에만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카카오와의 협업이나 시너지를 염두한 투자가 아닌, FI로서 제2의 두나무, 당근마켓, 루닛과 같은 원석 발굴에 매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인공지능(AI) 분야에 투자 늘린 네이버…사업 시너지 '초점'
네이버 D2SF는 지난해 신규 17곳을 포함해 총 26곳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아티피셜소사이어티, 리빌더AI, 가지랩, 유니트컴즈, 마크앤컴퍼니, 젠젠AI 등이 시드투자를 받은 대표적인 곳이다.
네이버 측 관계자는 “투자 분야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업종 구분이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AI 분야에 가장 많이 투자했다”고 말했다.
투자금은 전년 177억원 대비 약간 줄어든 167억원을 집행했다. 네이버 D2SF는 카카오와 달리 SI 투자 성향이 짙다. 네이버와 투자 스타트업간의 사업 시너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보고 투자한다.
투자한 기업들과의 협업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자율주행 실험을 하는 자율주행 시뮬레이터 기업 '모라이'의 경우 네이버랩스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네이버랩스의 디지털 트윈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인 '아크버스(ARCVERSE)'도 대표적인 협업 결과물이다. 네이버랩스가 자체 구축한 고정밀 지도와 자율주행 기술을 모라이의 시뮬레이터에서 테스트하며 고도화하는 등 양사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이용자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 음량을 자동으로 제동하는 '가우디오랩'과는 네이버의 영상(NOW)·음원(VIBE) 서비스를 공동 개발해 적용했다. 네이버 D2SF로부터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엔닷라이트도 네이버 스마트에디터와 웹 기반 3D 디자인 스튜디오를 공동개발해 기존 제품보다 사용성을 한층 강화했다. 올 상반기에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네이버 D2SF는 인수합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화엔진 설계 스타트업 '컴패니AI'를 네이버 클로바에서, 동영상 인식 AI 스타트업 '비닷두(V.DO)'를 네이버웹툰에서 각각 인수했다. 또 음악 추천 AI 스타트업 '버즈뮤직'도 스노우에 안겼다. 다만 지난해에 인수한 스타트업은 없다.
네이버 관계자는 “지난해 신규 투자한 스타트업 중에서도 시너지 논의를 시작한 곳이 많다”며 “올해 투자 예산을 정해두진 않았지만 역량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많이 나올 경우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