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TV 방송은 시기가 이르니 서두르지 마시오.”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10월 서울 장충공원 특설전시장에서 열린 제6회 한국전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개막식에 참석, 개막 테이프를 끊고 1시간 20여분 동안 각종 전자제품을 둘러보았다. 박 대통령은 TV전시관에서 컬러TV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를 본 관계자가 “흑백TV가 남은 나라는 우리뿐”이라며 컬러TV 방송과 시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금 농어촌에 흑백TV를 보급한 상황인데 천연색 컬러TV 방송을 하면 소비 성향만 높아진다”면서 “앞으로 컬러TV 방송은 천천히 하고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당시 가전업계 최대 숙원은 컬러TV 방송과 국내 시판이었다. 이를 놓고 국내업체 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아직 이르다는 시기상조론과 시대 변화인 만큼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맞섰다. 이런 가운데 주한미군방송(AFKN)이 그해 9월 5일 “내년 봄이나 초여름까지는 컬러TV 방송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소식에 화들짝 놀란 가전업체와 방송사들은 컬러TV 방송을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여당은 반대했다. 그해 9월 11일.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등은 정책위원회를 열고 “흑색TV도 제대로 보급하지 못한 형편에서 컬러TV 방송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하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 증언. “전자산업과 TV, 통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75년 미 8군 AFKN이 '내년부터 컬러방송을 시작한다'고 밝히자 우리도 컬러TV 방송을 시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전자산업이 우리의 전략산업인 만큼 컬러TV 방송을 가급적 빨리 시작해야 전자산업 발전이 촉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흑백TV도 제대로 보급하지 못한 상태에서 컬러TV 방송을 시작하면 방송 비용을 3~4배 증가시키고 소비성향을 자극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6회 한국전자박람회에서 '컬러방송을 서두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나는 컬러TV 방송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경제개발의 길목에서)
1977년 1월 21일. AFKN은 이날 새벽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컬러TV로 위성중계했다. 당시는 AFKN을 시청하는 국내 인사도 적지 않았다. 그해 9월 22일. 김성진 문공부 장관은 이날 “컬러TV의 국내 방영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검토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현재 우리 국민소득이 700달러 선인데 컬러TV 방영은 국민소득이 2000달러는 돼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현시점에서 컬러TV를 방송할 경우 △컬러TV 수상기 교체로 인한 국가 손실 △제작비 3배 이상 증가로 인한 물가 자극 △소비와 사치 풍조 조장 △수상기 보유자와 미보유자 간 국민 위화감 조성 등을 부작용으로 지적했다.
과학기술 자립과 전자산업 육성을 위해 담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아 '과학 대통령'으로 불린 박 대통령이었지만 유독 컬러TV 방송과 시판에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다.
상공부 전자전기공업국 실무자이던 A씨의 회고. “박 대통령은 소비를 조장하고 국민 계층 간 위화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로 컬러TV 방송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흑백TV 한 대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비싼 컬러TV가 나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비참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이유였어요.”
박정희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1978년 12월 귀국한 한국전자산업의 대부 김완희 박사(전자신문 창간 발행인)도 컬러TV 방송과 시판은 전자산업 육성과 기술 발전, 수출 확대를 위해 시급한 과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김 박사는 귀국 이전부터 박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컬러TV 방송과 국내 시판을 건의했다.
김완희 박사의 회고록 증언. “각하, 국내 전자산업이 더 빨리 발전하기 위해서는 돌파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컬러TV 방송을 허락해 내수시장을 넓히고 수출 물량을 늘려야 합니다. 3원색의 컬러TV는 흑백TV보다 부품이 3배나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국내 전자산업과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시장이 커집니다. 이미 세계는 컬러TV 시대에 돌입했습니다.”(두 개의 해를 가슴에 안고)
이런 건의에 박 대통령의 대답은 늘 같았다. “김 박사,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정부가 잘 사는 사람만 위하고 가난한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오. 흑백TV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그보다 훨씬 비싼 컬러TV가 나오면 없는 사람은 더욱 비참한 생각을 하게 될 거요. 물론 청계천 다리 밑에 사는 사람들까지 다 잘 살게 해 줄 수는 없지만 못사는 사람들에게 더 초라한 생각을 하게 해 주기는 싫소.”
경영 악화에 지친 전자업계는 1979년 들어 정부에 컬러TV 시판을 허용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그해 2월 17일. 한국전자공업진흥회는 상공부에 “최근 컬러TV의 수출 감소로 생산시설이 80%나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컬러TV 시판을 단계적으로 허용해 달라”고 건의했다. 진흥회는 “우선 관광호텔 등에 대한 판매를 허용하고 TV 생산업체별로 수출량 일정 범위 안에서 컬러TV를 시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흥회는 “국내 컬러TV 생산시설은 연간 160만대에 달하는데 수출은 미주 지역 25만대, 기타 지역 5만대 등 모두 30만대에 불과해 국내 컬러TV 시판은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해 9월 5일.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도 컬러TV 시판을 허용해 달라는 건의서를 상공부에 제출했다. 협동조합은 건의서에서 “국내 TV업계는 두 차례의 유류 파동에 따라 원자재가격 상승과 흑백TV 수요 감소, 미국의 컬러TV 수입 규제 등으로 경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컬러TV 시판을 허용해 달라”고 말했다.
그해 9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막한 제10회 한국전자박람회에 참석, 1시간여 동안 각종 전자제품을 둘러보았다. 박 대통령은 전시장에 도착해서 최각규 상공부 장관 및 유기정 국회 상공위원장 등과 개막 테이프를 자른 뒤 김완희 한국전자공업진흥회장의 안내로 우수제품 전시관과 가정용관, 산업용관, 전자부품관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박 대통령은 TV전시관에서 컬러TV 세트를 살펴본 후 “색상을 좀 더 선명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전자부품관에서는 “앞으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을 위해 부품을 잘 개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가전업계가 학수고대하는 컬러TV 방송과 시판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완희 박사는 이날 컬러TV 방송과 시판을 건의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사전에 이런 뜻을 상공부 장관에게 말했다. 박 대통령 앞에서 박충훈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 박사, 10년 전 전자공업 육성방안을 만들고 했는데 그때와 지금은 많이 변했죠?” “네, 제가 그때 5년 안에 전자제품 수출 1억달러 계획을 세웠을 때 다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년이 안 돼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이런 속도면 전자산업은 우리나라 제1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수출 일변도에서 탈피해 국내 시장을 함께 개척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평소와 달리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김 박사의 말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김 박사는 끝내 박 대통령에게 컬러TV 방송과 시판을 허용해 달라는 건의를 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간 후 오원철 경제2 수석이 김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님이 컬러TV 문제를 각하께 말씀드리면 제가 지원사격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김 박사는 좋은 기회를 놓친 자신을 책망했다.
김 박사는 서신으로 컬러TV 방송과 시판 허용을 건의하기로 했다. 그해 10월 26일 오전. 김 박사는 건의 편지를 청와대 총무 비서실에 전달했다.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음 두 가지를 해결해 주시면 전자업계는 기술과 수출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컬러TV 방영과 시판입니다. 기술 발전과 경제, 전자공업 진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관문입니다.”
이 편지가 박 대통령에게 보낸 김 박사의 마지막 서신이었다. 그날 밤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것이다. 전자업계의 숙원은 관점의 궤도를 수정한 5공화국에 들어와서 해결됐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