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의 설익은 '최대 주 69시간' 발표에 공분이 일고, 여기저기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정치권도 분주하다. 정부와 여당은 다급히 정책 재검토에 들어가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고, 야당은 주 4.5일제라는 카드를 던지며 근로시간 이슈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국회 내에서는 관련 토론과 회의가 줄을 잇고, 법안 발의로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주 근로시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해당 이슈가 다름 아닌 우리 생활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직업과 일터 문제이기 때문이다. 쉽게 손보기가 어려운 이슈이고, 어느 것보다 세심함이 필요한 영역이다. 정치권이 주요 선거 때마다 취업과 임금 등 일자리 관련 정책을 쏟아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자리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최저임금 인상, 현장안전 제고, 근로시간 유연, 청년 일자리 창출, 노동복지 향상 등 대책을 쏟아냈다. 각자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대책이 추구하는 바는 바로 '노동인권 향상'이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관련 대책을 결정하는 국회가 정작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국회 재직자들의 익명 공간인 '여의도 대나무숲'을 들여다보면 그 실태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의원 가족 결혼과 관련해 “아직도 청첩장 보내고, 축의금 접수하고, 답례품 돌리라고 강요하는 의원실은 없겠죠?”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의원을 추측하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사례는 많다. 보좌진에 '지인 입당' 경쟁의 불을 붙이고, 후원금 목표 금액을 설정해서 부담을 지우기도 한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조해야 하는 보좌진이 사적 잡무에 심부름꾼처럼 동원되기도 한다. 회사로 치면 명백한 사내 갑질이다. 논란의 주 근로시간도 이곳에선 예외다. 국정감사가 있는 가을, 예산을 처리해야 하는 겨울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국회 보좌진의 출퇴근 시간은 들쭉날쭉 멋대로이다. 입법의 전당인 국회에서조차 노동인권 사정이 이러한데 그들이 만드는 노동과 근로 관련 법안에는 진정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얼마 안 있으면 총선(2024년 4월) 시즌에 접어든다. 이제는 국회의원 의정활동 지원과 각종 잡문에 더해 지역 유세전도 뛰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재선 여부에 따라 직장의 존폐도 갈린다. 즉 총선은 보좌진에게 있어 구조조정 시즌이기도 한 셈이다. 총선이 끝난 후 새로운 국회가 들어서는 내년 5월이면 남는 이와 떠나는 이의 희비가 갈린다. 그러나 남는 이들도 안심할 수 없다. 국회 초반은 보좌진의 교체가 가장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느 의원실에서 몇 명의 보좌진을 갈아치웠는지를 두고 순위를 메기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떠나는 보좌진의 입에서 나오는 사유의 대부분은 '일신상의 이유'나 '다른 일을 해보려고' 정도로 갈음된다. 불만이 있어도, 모시던 의원에게 나쁜 소문이 나돌지나 않을까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그래서 그들의 뒷모습은 더 처량하다. 국회의원도 곁을 떠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의원의 방패막이가 되어 준 보좌진에게 '어른'으로서의 의리를 보여 주길 기대해 본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