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공개하며 자기규율 예방체계 핵심인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산업안전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에서 제기된 위험성평가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중대재해를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 개정안을 지난달 행정예고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행정예고안이 위험성평가의 부실한 운영을 가져오고 사업장내 안전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위험성평가는 노사가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해서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다.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수단이며, 국제적으로도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보편적 제도로 인정되고 있다. 세세한 명령 위주의 규제 방식에서는 사업장이 안전보건 문제를 외부기관에서 정한 기준을 지키는 정도로만 여기고 노사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노력을 무시한다. 위험 요인이 밝혀져야 위기의식을 느끼고 안전을 확보할 마음이 생긴다. 지속 가능한 재해예방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스스로 유해·위험 요인을 찾고 개선대책을 마련하는 자기규율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
1990년대 유럽 각국이 도입한 위험성평가는 2000년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됐으나 그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위험성평가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지 못함에 따라 위험성평가 실시와 상관없이 법령 위반 여부를 적용했다. 사업장에서는 어렵고 힘들다고만 인식했고 벌칙 규정도 없으니 굳이 실시할 유인도 없었다. 2019년 작업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업장의 66.2%가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 도입됐음에도 널리 확산되지 못한 요인을 하나하나 밝혀서 개선해야만 제대로 정착시킬 수 있다.
지금 규정으로는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기 위해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한 후 위험의 빈도(발생 가능성)와 강도(중대성) 크기를 각각 구해서 더하거나 곱하는 방식 등으로 조합한 뒤 위험성을 추정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어렵고 복잡하게 여기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중소기업에서 빈도와 강도, 근로자의 의견, 과거 재해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위험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법·핵심요인분석법(OPS)·위험성3단계분석법 등 쉽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매년 똑같은 과정을 불필요하게 반복만 하는 것으로 지적돼 온 정기평가 절차도 간소화했다. 또 위험성평가 전 과정에 근로자가 참여하도록 하는 한편 위험성평가 결과를 근로자에게 알리고,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통해 근로자가 항상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효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기업의 위험성평가 실시를 지원하기 위해 컨설팅, 재정지원, 교육기회 등도 제공하고 있으며, 산업안전감독에서도 위험성평가 특화점검을 새롭게 도입했다.
개정안 시행 시점에 맞춰 새로운 위험성평가 제도에 대한 설명자료와 다양한 위험성평가 방법에 대한 안내서를 보급하고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도 올해 안에 마련할 예정이다. 중대재해의 약 80%가 중소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쉽고 간단한 위험성평가 방법의 도입은 위험성평가의 부실한 운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렵다고만 느끼던 위험성평가를 중소기업에서 친숙하게 느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위험성평가를 통해 노사가 일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위험한지 알게 되고,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체계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금정수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원과장 kum05@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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