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까지 좌우하는 시대다. 거대한 우주에서 미세한 반도체, 최근에는 생성형AI 열풍을 몰고 온 챗GPT까지 과학기술 발전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이제 과학기술 개발 경쟁이라는 말이 어색하고 과학기술 혁신 경쟁이 더 익숙하다.
UNIST가 과학기술 혁신에 교육을 결합한 과학기술 교육혁신에 속도를 높인다. 자율과 체험을 양 축으로 학생 학습 선택권을 강화하고 프로젝트 중심 교과목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UNIST는 이달 '과학기술 교육혁신 2.0' 3차연도 과정을 시작했다.
'과학기술 교육혁신 2.0'은 과학기술 교육이 지닌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2020년 수립하고 2021년 본격 도입한 자체 과학기술교육 혁신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학생 중심 실전형 교육이다. 학생이 흥미를 느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배우고 경험하는,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
UNIST는 기초교과목 재편을 시작으로 현장 기반 POL 교과목 도입, AI연계 과목 개발 운영, 실전문제연구팀 지원 등 일련의 자체 교육혁신 프로그램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실전문제를 직접 해결하며 습득
'POL(Prototype-Oriented Learning)교과목'은 산업 및 사회 현장의 실제 문제를 프로토타입 형태로 해결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다. 자율과 체험을 중시하는 'UNIST 과학기술 교육혁신 2.0' 대표 교육 프로그램이다.
기존 학년별 수평적 교육은 학기와 학년 단위로 단계를 밟아 더 높은 수준의 전공과목을 학습한다. 전공과목 전체를 이수한 4학년이나 고도화 단계인 대학원생이 아니면 현장 실전 문제에 도전은 물론 해결도 어렵다. 배우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늘 따라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용훈 UNIST 총장은 기존 수평적 교과목을 쿵푸형 교육, POL교과목을 격투기형 교육으로 비유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때 해박한 지식까지는 필요없다. 바로 대응할 수 있는 꼭 필요한 핵심 기술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이 총장의 지론이자 UNIST 과학기술 교육혁신 2.0의 추진 배경이다.
POL교과목은 현장 실전문제 해결이 목표다. 필요한 핵심내용은 학년별 교과목에서 주제단위로 뽑아 재구성한다. 실전문제를 직접 해결하면서 여러 전공과목의 핵심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UNIST는 지난 2년 동안 기계공학과 '자율자동차 만들기',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가막못에서 유전자 가위찾기' 등 15개 POL교과목을 개발했고 이 가운데 10개 과목을 운영했다.
그룹프로젝트학습(GPBL)을 적용해 구성원 간 소통과 협업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도 POL교과목의 장점이다.
그룹 프로젝트는 소통과 협업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문제 해결에 대한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현장 문제 해결에 필요한 협력 과정과 의사소통 절차를 경험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융합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일례로 '드론 설계와 구현'을 주제로 POL교과목을 만들면 과목 이름에 문제와 해결 목표가 들어있다.
학생들은 물리 역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드론 무게에 따른 프로펠러 회전속도 등을 정하고 드론을 제어하기 위한 전자 제어·통신, 이를 드론에 적용하기 위한 HW·SW 설계를 배우고 실습한다.
드론 설계와 구현이라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기존 전공과목에서 필요한 지식을 재구성해 배우고, 직접 드론을 설계하면서 핵심 지식의 쓰임새와 기술개발이라는 실전 경험을 쌓는다.
김성엽 UNIST 공대학장은 “과학기술 R&D는 물론 대학 졸업 후 사회와 산업 현장에 진출했을 때 주어지는 업무와 역할은 대부분 이러한 실전문제 형태다. 그룹으로 실전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며 “POL교과목은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어떤 지식을 쌓고 경험할 것인지 생각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학생의 선택과 자율성
'AI연계 과목'도 격투기형 교육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POL교과목의 장점에 AI를 결합해 학생에게 AI 융합교육과 활용이라는 특기를 부여한다. 전공 연구주제나 실전 과제를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형태로 해결하면서 AI를 배우고 익히며 친숙해지는 AI 융합 교과목이다.
POL교과목처럼 현장 문제 해결에 필요한 AI 핵심지식을 간추려 교과내용을 재구성하고, 그룹프로젝트(GPBL) 방식으로 답을 찾는다. 전공 지식과 경험, AI 지식과 활용 경험, 협업 유용성까지 종합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UNIST는 도시환경공학 전공에 AI를 접목한 'AI를 활용한 재난재해 모니터링과 예측', 기계공학 전공과 AI를 연계한 'AI기반 디지털 제조공학' 등 14개 AI연계 교과목을 개발하고 10개 과목을 운영했다.
학생 학습선택권 강화에 초점을 맞춰 기초 교과목을 재편한 것도 과학기술 교육혁신 2.0의 성과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지도교수, 현장 전문가가 한데 어울려 사회 및 산업 현장 과제를 발굴하고 직접 해결해보는 '실전문제연구팀'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 교육혁신 프로그램이 지닌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학생의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고 게임처럼 직접 해결하며 얻는 학습 효과는 크고 다양하다. 학습에 재미를 느끼고, 재미는 집중하게 만든다. 내 일상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진 현장 해결 과제는 흥미를 배가시킨다.
과학기술 혁신 속도에 대한 체감 효과도 크다. 현장 이슈를 직접 체험하면서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기술과 산업 트렌드를 알게 된다. 시대가 요구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과학기술 핵심인재가 되는 과정이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