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은 빛의 속도로 수억년 떨어져 있는 별의 생성 원리를 알고자 하고, 1만년 전 지구의 기후를 궁금해하는 등 인류의 호기심에 근간을 둔 학문이다. 기초과학은 기후변화, 코로나19 팬데믹, 엄청난 기술 발전 속도에 따라 '지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들은 한결같이 기초과학에 꾸준히 투자해서 국가의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인류의 삶과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 왔다.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두 나라는 경제 규모, 국토, 인구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이며, 영국·프랑스·독일이 각각 3∼5위를 차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국가별 노벨상 수상자 숫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순이다. 후발주자인 중국을 제외하면 영향력이 큰 나라는 기초과학 투자와 성과가 큰 나라임을 눈치챌 수 있다.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은 서로 인접해 있고, 역사적으로 큰 전쟁을 치르기도 하면서 경쟁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세 나라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회(MPG) 등 각국의 기초과학시스템을 기반으로 국경을 넘어 밀접한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
일본은 1917년 이화학연구소(RIKEN)를 설립하고 100년이 넘는 투자로 방사광가속기·중이온가속기·슈퍼컴퓨터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시설을 구축했으며, 일본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를 비롯한 최고 수준의 연구자를 길러 냈다. 노벨상 수상자 숫자로 세계 7위인 (2000년 이후 세계 3위) 일본은 기초과학에서 세계적 영향력이 매우 큰 나라이며, RIKEN은 일본을 대표하는 연구소이자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소가 됐다.
우리나라는 미래 경쟁력 확보와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선도국가 역할이라는 비전으로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를 설립하고 10여년 동안 국가기초과학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IBS 설립 당시 독일 MPG, 일본 RIKEN은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국가기초과학에 장기투자를 지속한 영국·프랑스·독일·일본과 비교해 역사는 일천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고속 성장으로 IBS는 벌써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고, 해외에서 제법 주목받는 기초과학 연구기관이 됐다. IBS를 이끌고 있는 필자는 지난해 10월 우주입자를 연구하는 세계 6위급 고심도 지하실험시설 '예미랩'의 준공과 세계 최고 수준의 중이온가속기 '라온'의 초기 빔 인출을 앞두고 RIKEN의 고노카미 마코토 이사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을 만났다. IBS와 RIKEN은 2015년 업무협정을 체결하며 협력을 이어 왔지만 이제는 연구시설과 연구자 측면에서 대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선언하며 '진정한 협력 파트너'로서 기초과학 협력체계를 강화하고자 했다. 양 기관은 기초과학의 미래 협력을 굳건히 하자는 데 뜻을 모았으며, 우주 근원을 밝히는 우주입자 측정 및 중이온가속기 연구 분야를 포함한 포괄적인 기초과학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제 IBS는 일본 RIKEN을 벤치마킹 대상에서 협력 파트너로 삼으려 한다.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로 이어지는 연구 협력 모델처럼 IBS와 RIKEN 파트너십은 한·일 양국의 과학기술 혁신역량을 더욱 길러 줄 것이다. 국경을 초월해서 기후위기, 팬데믹 등 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는 아시아권의 기초과학 연합체를 갖추는 초석이 될 것이다. IBS는 일본은 물론 과학 선진국과 연합하고 협력, 기초과학 강국 대한민국의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미래세대 행복과 안전에 기여하는 영향력 큰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dynoh@ib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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