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필자의 연구진은 매우 재미있는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살아서 폭포수처럼 맥동하는 돼지 동맥 안에서 직경 1㎜ 마이크로로봇을 자유롭게 정밀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격주로 돼지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하면서 그동안의 연구 내용이 맞는지 확인한 뒤 다시 연구 내용을 보강하고, 또 다음 격주 실험을 준비하는 세월을 보냈다. 중간 결과로는 로봇을 조이스틱으로 정밀 제어하며 컴퓨터상에서 로봇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 줬다.
지면을 빌어 참여한 연구진과 궂은일을 도맡은 동료 박석호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언론 발표를 앞뒀을 때 어떤 이가 내용이 공상과학 영화 '마이크로결사대'와 비슷하다며 한번 보란다. 확인해 보니 우리 연구와 비슷한 점이 많아 더욱 흥미로웠다. 언론인들을 초청해서 실제 동물실험도 실시했다. 그때 우리 연구와 영화의 유사성도 발표했다. 세 가지다. 주사기로 혈관에 마이크로로봇을 삽입하는 방법, 컴퓨터에 의한 마이크로로봇 사전경로 기획, 혈관 속 운행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미래를 예측하는 신문기사들이 실린다. 혈관치료 마이크로로봇의 상용화 예측도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우리는 마침내 더 이상 예측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이 연구는 우리 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외국 TV에서도 이 성과를 취재하러 오곤 했다. 우리는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후 다양한 기계전자식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하는 기반을 확보했다.
또 다른 이정표가 하나 있다. 박테리오봇이다. 이것은 기계전자식이 아닌 생체세포 방식이다. 이전까지는 외국에서 각자 마이크로로봇을 발표하곤 했는데 우리는 2013년 마이크로로봇에 의료 치료 기능을 부가한 '나노의료로봇'을 먼저 발표했다. 지금도 외국 연구팀이 우리 연구 결과를 인용하곤 한다.
박테리아는 세균이다. 인체에 대부분 독성을 보인다. 그런데 이 세균은 암을 공격하는 순기능도 있다. 박테리아에 달린 편모를 연구하는 로봇학자도 있다. 정통 로봇공학자 입장에서 인공적인 기능과 운동 기능이 있어야 로봇으로 간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미생물일 뿐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미생물인 박테리아에 인공적인 약물을 부착한 새로운 개념인 나노의료로봇이다. 이 연구 성과는 국제 원천특허까지 도출했다. 우리 연구팀은 박테리아 독성이 향후에도 취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해 이 분야 연구를 중단하고 좀 더 인체에 순기능을 하는 생체세포에 몰두했다. 결국 또 다른 새 영역을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 우수 연구팀들은 박테리아를 이용한 마이크로로봇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이들의 발표를 들으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최근 외국 학회에 참가하면서 흥미롭다고 느낀 연구는 독일 드레스덴공대 연구 결과다. 힘이 약한 정자에 마이크로 외투를 씌우고 자기장으로 힘을 더해 줘 난자에로 힘 있게 헤엄쳐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기술 자체는 특별하진 않지만 기술응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는 생체세포의 순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대식세포, NK세포, 엑소솜 등 만능세포로 불리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다양한 마이크로로봇 개발이 주목된다. 우리 연구팀은 시장성이 뛰어난 무릎연골 질환에 주목했다. 박테리아나 면역세포는 자가 운동기능이 있는 반면에 줄기세포는 자가 운동성이 없다. 손상된 무릎관절을 절개하지 않고 주사요법으로 시술하곤 하는데 문제는 주입한 줄기세포가 스스로 움직이는 기능이 없어서 표적 효율이 낮고 비싼 시술을 반복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마이크로로봇은 인체 내에서 정밀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줄기세포가 들어있는 마이크로 구조체를 복잡한 무릎관절 부위까지 조이스틱으로 정밀하게 조종해서 손상된 연골 부위에 부착시킬 수 있다. 연구 결과는 해외 유명저널에 실렸고, 몇 개월 후 스타트업회사에 기술이전됐다. 이 기술은 올해 초 CES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마이크로의료로봇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정의가 없다. 필자가 내린 마이크로의료로봇의 정의는 '인식·판단·동작·이동·통신 기능에 인공적 기술이 부가돼 능동성을 띠고 인체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진단·치료나 약물전달 기능을 수행하는 초소형 의료기기 또는 관련 기술이 부가된 보건의료기술'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마이크로로봇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외부와 선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운동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개별 마이크로의료로봇을 연구개발(R&D)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일반화할 수 있는 마이크로의료로봇 특성을 도출하게 됐다. 마이크로의료로봇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구동모듈, 캐리어모듈, 진단치료모듈, 인식시각화모듈을 들 수 있다. 이들이 모여 마이크로의료로봇을 구성한다.
구동모듈은 인체 내 마이크로의료로봇에 주행이나 운동을 부가하는 기능이다. 캐리어모듈은 목표 지점까지 마이크로치료제(약물이나 면역세포, 줄기세포 등 바이오소재)를 용기에 담아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크기는 마이크로미터(㎛)에서 나노미터(㎚)다. 진단치료모듈은 일정한 크기 로봇(캡슐내시경 등)에 다양한 진단·치료 기능이 부가된 모듈로, 크기는 ㎜에서 ㎝다. 인식시각화모듈은 마이크로로봇이 크기가 작아서 일반 X선 등으로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다른 방식으로 인체 내 마이크로로봇의 실시간 위치 추적이나 영상 시각화를 하는 기능이다.
그동안 정부는 마이크로의료로봇 분야에 장기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봇은 산업용로봇과 서비스로봇으로 나뉜다. 서비스로봇에는 시장성이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로봇이 있다. 의료로봇은 다시 수술로봇, 재활로봇, 시뮬레이터, 마이크로의료로봇, 병원 이동로봇으로 분류한다.
마이크로의료로봇은 의료기기 특성으로 보건복지부에 해당되며, 복지부는 여기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R&D뿐만 아니라 R&D에서 파생된 다양한 특허를 활용해 의료기기 제품화를 원하는 기업이 직접 의료기기 품질제조관리규정(GMP)에 맞춰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인 '마이크로의료로봇 개발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외국에도 마이크로의료로봇 분야에서 R&D와 기업 시제품까지 지원하는 시설은 없다. 이러한 국내의 훌륭한 마이크로의료로봇 인프라를 활용해 우리가 그동안 고전해 온 선진국 특허장벽을 거꾸로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제까지 마이크로의료로봇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핵심은 이해하기 어려운 마이크로의료로봇의 기술 얘기가 아니고, 거대한 세계 약물전달체(DDS)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표적화 효율이며, 바로 마이크로의료로봇이 DDS에서 신속성과 높은 표적화율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의료로봇은 약물과 의료기기를 포괄하는 융·복합의료기기 또는 융·복합약물 특성을 띠고 있다.
인체는 장기 내에서 대표적으로 세균과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손상되는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들을 보통 인체를 공격하는 항원이라고 말한다. 공통점은 효율 높은 운동 기능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과 대등하게 싸우는 인체의 우군이 바로 세균 크기의 마이크로로봇 또는 바이러스 크기의 나노로봇이다. 운동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마이크로·나노로봇도 인체 대부분의 장기에 침투해서 공격하는 항원에 맞서는 등 인체 대부분의 장기에 적용된다.
다만 시장성과 적용 기술 난도에 따라 개발 시기가 순차적일 따름이다. 인체는 보통 10여개의 기관계로 구성된다. 소화계·순환계·골격계·근육계·신경계 등 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다양한 마이크로로봇은 극히 일부분이고, 시간이 갈수록 매우 다양한 마이크로·나노로봇이 나온다는 건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가 이 새로운 신기술 경쟁에서 얼마나 빨리 주도해서 선점하느냐가 남은 목표다.
박종오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장 jop@kimiro.re.k
〈필자〉박종오 박사는 우리나라 마이크로의료로봇 산업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전문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과정 수료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서 로봇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에서 로봇 응용 분야를 연구했다.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장기대형국책사업인 21세기프론티어사업의 단장직을 맡아 우리나라 마이크로로봇 분야를 개척했다. 전남대 교수를 거쳐 독립연구재단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을 설립, 이끌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 집행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