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첫 논의를 시작한 납품대금 연동제가 14년 만에 국회를 통과, 10월 4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란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원재료의 가격 변화에 따라 납품대금을 조정·지급하는 제도다. 예상치 못한 공급 충격에 의해 원재료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그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하던 불합리한 거래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됐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제도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법제화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소기업계가 14년 동안 고대했던 납품대금 제값받기라는 법 개정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디테일'이 중요한 것이다.
가장 먼저 납품대금 연동제 적용 예외 조항이 '제도의 빈틈'으로 작용해서 안착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연동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 사항은 크게 네 가지다.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납품대금이 1억원 미만의 소액계약인 경우 △90일 이내의 단기 계약인 경우 △상호 합의해서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경우 등이다. 예외 조항이 남용될 경우 많은 중소기업이 연동제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짙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업종별 거래관행 조사에 따르면 아스콘 제조 업종은 도로 구간에 따라 주로 일주일 내지 1개월 단위로 계약한다. 이 경우 90일 이내 단기계약에 해당, 연동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또한 1억원 미만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상당수 소기업 역시 소액계약에 해당돼 연동제 적용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처럼 업종별로 다양한 거래관행에 대해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서 현재 개정 단계를 밟고 있는 시행령에 업종별·규모별 예외 조항을 차등화해 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한편 위탁기업이 쪼개기 계약을 통해 예외 조항을 악용하지 않도록 하위법령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연동 적용 대상의 범위가 협소하다는 점도 보완해야 할 '제도의 빈틈'이다. 주물, 금형, 용접, 열처리 등 중소 뿌리기업은 납품대금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지난해 전기료가 27%나 폭등, 영업이익의 43.9%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나 납품대금 연동제 대상인 '주요 원재료'가 노무비와 경비를 제외한 재료비에 국한돼 전기료는 연동제를 통한 납품대금 조정을 기대할 수 없다. 원재료비와 더불어 전기료 역시 납품대금을 구성하는 주요 항목임에도 회계 기준 상 경비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연동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현재 상생협력법 상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의 적용대상은 원재료 이외에도 노무비, 경비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고시(하청대금 지불 지연 등 방지법에 관한 운용 기준)를 통해 노무비, 경비의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지 않는 경우 부당 하청대금 결정 우려행위로 명시해 납품대금 연동을 유도하고 있다. 이를 참고, 납품대금 연동제 역시 적용범위를 원재료에서 공급원가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입법 보완해 나가야한다.
정부의 공공조달 계약에도 납품대금 연동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 조달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조달계약 전체 규모는 184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의 계약 규모는 119조원으로 64.6%를 차지한다. 중소기업에 조달시장은 중요하지만 국가계약법이 우선 적용된다. 상생협력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납품대금 연동제가 적용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공공조달계약을 포함하지 못하는 납품대금 연동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납품대금 연동과 관련된 여러 법령과 부처로 분산된 체계를 종합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연동제 적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 나가야 한다.
납품대금 연동제의 안착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제 주체의 제도 이행 의지와 실천이다. 수탁기업과 위탁기업은 순망치한 관계에 있다.
부품 문제로 대규모 리콜을 경험한 일본 자동차 업계의 사례를 통해 원자재 값의 변동위험을 수탁기업에 전가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위탁기업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교훈을 잊어선 안된다.
중소기업의 50.6%가 수탁기업이고 근로자의 47.2%가 수탁기업에 종사하는 현실에서 납품대금 연동제는 수탁기업 근로자의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기업의 성장은 기술·경영 혁신으로도 이어져 위탁기업의 품질 수준 또한 증대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회원의 다수가 중소기업인 경제단체에서 납품대금 연동제 안착과 확산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제부터라도 대기업 등 위탁기업의 적극 참여를 통해 납품대금 연동제가 공정한 거래와 상생협력 문화를 조성하는 제도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 yang@kbiz.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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