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AI(SGAI; Super-Giant AI)는 대규모 데이터와 복잡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인간처럼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능력을 갖춘 AI 모델로, 최근 빠른 발전을 거듭하며 비즈니스·의료·학술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돼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초거대AI 기반 서비스가 새로운 AI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산업 자동화나 효율적인 의사결정,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경쟁력 있는 국내 AI기업 간 상호협력과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초거대AI추진협의회가 출범하는 등 우리나라 초거대AI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한 기업의 적극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우리나라 초거대AI는 주로 정보기술(IT) 대기업에서 연구개발(R&D)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2021년 기준으로 미국과 비교해 89.1%(1.3년) 수준이며, 압도적 자본력과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선도기업과 비교할 때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컴퓨팅 부문에서도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초거대AI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며, 기술 발전에 우호적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최근 초거대AI 규제 바람이 불고 있는데 정부는 AI 법제정비단을 운영해 개인정보, 지식재산권 등 현 제도를 초거대AI 시대에 맞게 규제 개혁을 가속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글로벌 선도 국가·기업의 기술을 따라잡아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섣부른 규제가 오히려 기술 잠재력을 억제하고 기술 개발·혁신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따라서 기술 개발·혁신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우선해서 글로벌 선도 국가·기업과의 격차를 좁혀야 하며,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빠르게 논의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규제 도입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과거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거대AI와 같은 신기술 융합 서비스 시장인 의료, 법률, 금융 등 산업에서는 여러 규제로 말미암아 산업 발전 및 확장이 제한돼 있다. 특히 의료분야의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대됐지만 국내총생산(GDP) 상위 15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비대면 진료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관련 법안이 아직도 국회에 묶여 있다. 의료법 이외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지식재산권 등 신기술 도입에 대한 각종 규제가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돼 있거나 개선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초거대AI와 같은 신기술이 국민 일상과 사회·경제 전반에 확산함에 따라 야기되는 일자리, 보안, 공정경쟁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업계의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초거대AI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는 압도적인 컴퓨팅 파워와 대규모 자본 등을 활용해 주도권 확보를 위한 '속도전'이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제약하기보다는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초거대AI에 대규모로 투자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술 경쟁우위에 있는 선진국은 주도권 쟁탈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AI를 국가 과제로 내세우고 정부와 기업 협력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고, 미국 정부의 태스크포스(TF) '국가인공지능연구자원'(NAIRR)은 올해 초 향후 6년 동안 26억달러(약 3조241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민간 컴퓨팅 인프라 보충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S도 오픈AI에 12조원을 투자하는 등 민간기업도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민관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투자와 함께 AI 분야 기술 발전과 혁신성장을 우선하며, R&D와 활용을 저해하는 규제 장벽을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2020년 1월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은 'AI 애플리케이션 규제에 관한 가이드'를 제안했다. 가이드에는 기술 발전과 혁신성장을 우선하고 R&D와 활용을 저해하는 규제 장벽 최소화뿐만 아니라 자유·인권·지식재산권 보장 등 미국의 핵심 가치를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기조는 2020년 G20의 '디지털경제 태스크포스'의 AI 국가정책 사례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는데, 많은 국가들이 기술 관련 규제 장벽을 최소화해 신기술에 대한 개방성을 높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민간기업 간 협력에도 정부가 나서고 있다. 베이징대 베이징인공지능아카데미(BAAI)는 중국 정부가 약 600억원을 지원해 약 1조7500억개의 매개변수가 투입된 초거대AI '우다오2.0'을 공개했고, 여기에는 바이두나 샤오미 등 대기업이 이사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베이징에는 약 2조5300억원이 투입돼 AI 국가 단지도 조성되고 있어 초거대AI에 대한 주도권 다툼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스타트업 강국인 이스라엘의 경우 지난해 영국 토르투아즈 미디어(Tortois media)의 2022년 글로벌 AI지수에서 우리나라를 2단계 앞지르고 종합순위 5위를 기록했다. 특히 초거대AI '쥐라기'를 개발한 AI21랩스가 지난해 800억원 규모인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완료하며 오픈AI의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도 고등교육위원회, 기획예산위원회, 이스라엘혁신청, 재무부 등이 모인 조직인 '텔렘'을 통해 5년 동안 약 2조원을 인적자본 확충과 컴퓨팅 인프라 마련에 투자하는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인간중심AI(HAI; Human Centered AI)에서 발간한 '인공지능 지수 보고서 2023'에 따르면 2013~2022년 정부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진 곳은 미국으로, 누적 금액이 2489억달러에 달하고 그 뒤를 이어 중국·영국·이스라엘 순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55억7000만달러로 9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누적 금액의 절반이 넘는 31억달러가 2022년에 투자, 상위권에 랭크된 타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근 들어 AI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AI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기술 경쟁력 우위와 우수한 인적자본 확충 및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 및 지원을 과거부터 해 왔으며, 신기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규제 장벽을 최소화하고 있다.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오는 초거대AI 등의 신기술에 섣부른 규제 도입이 우선되면 오히려 신기술 발전 및 확산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규제 프레임에 갇혀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3차원(3D) 프린터나 위치기반서비스(LBS), 드론 등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때다. 승인제도와 같은 사전규제, 기업 활동 영역에 제약을 두는 포지티브규제, 안전성 인증 기준 등의 부재로 말미암아 신제품·서비스 출시가 어려운 규제인프라 부재 등 신사업의 장벽인 규제트라이앵글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술 발전·혁신과 규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정부와 기업·연구기관 및 관련 협회·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해서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국회를 찾은 MS의 브래드 스미스 부회장은 'AI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를 주제로 강연하며, 클릭 몇 번으로 문서를 프리젠테이션으로 바꿔주고, 명령어 하나로 장문의 텍스트부터 이미지, 동영상까지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소개하였다. 이는 초거대AI가 생산성 향상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도구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로서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시기에 진입한 우리나라에 있어서 AI에 대한 민·관 협력과 대규모 정부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각인시켜주었다. 특히 MS의 경우, AI를 관리 감독하는 수백 명의 전담 및 간접 인력을 활용해 AI 유해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강한 규제 없이도 안전하게 AI를 운영할 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강한 규제의 선제적인 도입이 아닌 민·관 협력을 통해 AI 유해성을 자체적으로 완화해 나가거나 정화해 나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AI법)은 인간에 대한 안전·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서는 AI 기술에 대해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세우고 있으며, 인간의 생명이나 안전과 직결된 부분을 '고위험 영역 AI'으로 제한해서 제약하는 규제들도 충분히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법안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해당 법안에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국민의 안전과 인권 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이미 충분히 포함하고 있어 규제를 더 강화할 경우 오히려 과거의 실패 사례를 또다시 되풀이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초거대AI는 우리 사회와 산업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문제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섣부른 규제 도입이나 무조건적인 규제 타파를 지양하고 기술 발전과 규제 간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무엇보다 공공 분야에 초거대AI를 도입하고 활용해서 시장을 충분히 확장해 나가야 한다. 초거대AI 산업 기술 발전을 위한 체계적 국가지원제도 마련의 초석이 될 AI법 제정과 함께 정부의 대규모 R&D 투자와 민간 주도의 기술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단시간에 초거대AI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여 경제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의 잠재력이 최대한 활용돼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jhjoh@sw.or.kr
〈필자〉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2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이다. 2021년 2월부터 법정단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회장으로 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컴투스홀딩스 사외이사, 재단법인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이사로 있다. 지난해 9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은 데 이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1기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12월에는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국무총리실산하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SW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