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생성 AI 능력은 어디까지? 챗GPT 활용 KAIST 반도체 설계 강의 현장

“챗GPT와 5분 남짓 짧은 대화를 한 것만으로, 반도체 구조 신호전달 특성(아이 다이어그램)을 추정하는 심층신경망(DNN) 모델 코드를 짤 수 있었습니다. 반도체 설계 같은 첨단 영역에서도 챗GPT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해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과정생이 지난 26일 진행된 '전자파 간섭(EMI)·전자파 적합성(EMS) 디자인과 분석' 강의(김정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중간 프로젝트 설명회에 참가해 상기된 얼굴로 한 말이다.

서해석 KAIST 석사과정 학생이 챗GPT를 이용해 도출한 심층신경망(DNN)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해석 학생은 모든 코드 작성을 챗GPT가 전담했다고 밝혔다.
서해석 KAIST 석사과정 학생이 챗GPT를 이용해 도출한 심층신경망(DNN) 코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해석 학생은 모든 코드 작성을 챗GPT가 전담했다고 밝혔다.

이 강의는 알고리즘이나 신경망 모델로 반도체 구조를 구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특징은 강의 목표에 반드시 챗GPT를 활용하도록 명시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설계 실전지식을 배우는 자리면서, '챗GPT가 첨단 분야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물음에 답을 얻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강의를 수강하는 석사 1학년생 4개조가 참여해 자체 프로젝트 제반 사항, 이를 수행하며 느낀 점 등을 공유했다. 발표에 나선 4명 조대표 모두 놀라는 분위기다. 챗GPT가 이 만큼 '강력한 도구'인지 프로젝트 전에는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수직 관통하는 전극구조(TSV)를 DNN으로 분석한 서해석 학생은 다소 겸연쩍은 듯 “나는 모델 코드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도체 구조 신호전송실패율(지터) 문제를 다룬 김태수 학생은 심지어 DNN의 '하이퍼 파라미터'를 정하는 것조차 챗GPT에 일임했다고 말했다. 하이퍼 파라미터는 노드 개수 등 신경망의 세부 사항이다. 반도체 설계라는 최첨단 영역, 그 중에서도 극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챗GPT가 역량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설명회에 참석한 좌중의 탄성이 쏟아지기도 했다.

학생들은 코딩 등에 필요한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점도 챗GPT 활용의 장점으로 꼽았다.

박현아 학생이 챗GPT 활용 확대, 발전 양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현아 학생이 챗GPT 활용 확대, 발전 양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챗GPT로 유전 알고리즘(GA)을 만들어 최적의 디커플링 커패시터(전원공급 장치 일종) 배치를 따진 박현아 학생은 챗GPT 강력함을 긍정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질문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챗GPT는 질문에 따라 대답이 많이 달라진다”면서 “원하는 답, 값을 얻으려면 질문에 유의해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학생들도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챗GPT가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사 코딩방법을 몰라도, 챗GPT 같은 생성 AI에 우리가 일상적인 언어(자연어)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코딩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발표자 안정민 학생도 “'자연어 코딩' 시대가 열릴 가능성을 엿봤다”고 말했다.

최근 '설명가능성' 부재를 이유로 챗GPT 사용을 꺼리는 이들이 생기는 것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김태수 학생은 “우리는 엔진 작동원리를 몰라도 매일 자동차를 이용한다”며 “설명가능성만 따지기에는 챗GPT가 우리 삶, 나아가 공학 분야에서 이미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가 학생들의 발표 내용을 촌평하고 있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가 학생들의 발표 내용을 촌평하고 있다.

행사를 마련한 김정호 교수는 챗GPT 수업적용 기회를 늘리겠다고 전했다. “KAIST는 새로운 조류에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 챗GPT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수업에 방법론 중 하나로 적용했는데 그 성과가 생각 이상”이라며 “다음 학기에는 아예 챗GPT를 대주제로 특강을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