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원산지 점검과 통관 검사 강화 조치에 이어 우리 기업의 중국 수출 계약 취소 사례까지 등장, 미-중 갈등으로 인해 국내 기업 피해가 가시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미국과 우리나라가 동맹을 강화하려는 행보를 보이자 중국이 이에 맞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는 최근 자국 주요 전자제품 기업을 대상으로 반도체 원산지를 점검하고 있다. 중국산 전자제품에 탑재된 반도체 품목과 원산지, 중국산 반도체가 아닌 외국산 반도체를 사용하는 이유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 A사 대표는 “최근 중국 선전에 있는 거래처인 현지 전자제품사로부터 외국산 반도체 사용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 소식을 공유 받았다”며 “거래처는 공문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발주계약을 미뤄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B사 대표는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현지 기업은 아예 수입계약 물량을 전부 취소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지 기업은 중국 정부로부터 한국산 반도체 장비를 구입하지 말라는 취지의 권유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우리 기업의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에 따라 중국은 한국 장비 도입을 늘려왔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 '칩4 동맹'에 참여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해협 관련 발언,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 등에 대한 중국의 반격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우리나라를 압박했다. 이번 반도체 전수조사 역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 주도 움직임 속에 우리나라와 미국 등에 직접적 타격을 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화물에 대한 중국 통관 검사도 강화돼 지난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 국면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는 내부 통신망을 통해 각 지역 세관에 한국발 및 한국산 화물에 대한 통관 검사 강화를 지시했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아직 세부 지침이 나오지 않아 각 세관은 다른 세관 움직임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특정 세관에서 통관 검사를 강화하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통관 지연에 따른 문제가 현실화하면 대중국 수출 감소세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중국 수출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인 2011~2017년 연평균 2.8% 증가했으나 최근 5년간(2018∼2022년) 1.9% 증가로 성장세가 둔화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지속 감소세로 반도체 수출 역시 줄어들고 있다. 3월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9.5% 급감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전수조사 실시와 통관 검사 강화 지시만으로도 중국 현지 기업에 한국산 반도체를 쓰지 말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며 “국내 반도체 기업 피해가 본격화되기 전에 정부가 중국 정부 등과 선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