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시대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이 벌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자국의 첨단기술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입법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기술 경쟁과 관련된 산업·기술·연구를 망라해서 종합한 '반도체와 과학 법'이 2022년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포됐다. 이에 대응해 우리나라도 경쟁력 강화와 보호 중심으로 입법 및 정책을 빠르게 수립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과 관련해 '국가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전략'이 2021년 12월 처음 발표됐고,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2023년 3월 제정됐다. 그리고 산업 전략으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2022년 2월 제정됐다.
급한 준비는 했지만 이제 경쟁의 최전선에서 이길 실전 전략이 필요하다.
실전 전략에서는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를 가늠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책전략 전문가들은 이제 막 시작된 기술패권경쟁은 최소 20년에서 30년, 길게는 1970년대에 시작해 최근까지 국제경제질서의 근간이 되어 온 신자유주의처럼 50년 이상 중장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우선 경쟁을 시작한 당사자인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헤게모니 다툼으로도 볼 수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며 발표한 국정방향 보고서에서 짚은 대로 R&D 투자를 좋은 일자리, 두터운 중산층이라는 경제정책의 목표와 연결한 데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이 R&D 투자를 게을리한 것이 결국 미국민에게 중산층을 두텁게 할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데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반성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가장 활력있는 경제를 이끌고 가는 미국도 혁신을 멈추면 새로운 성장이 느려지고 국민에게 삶의 질 가운데 기본인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결국 국가의 기본 임무인 국민의 삶을 챙기는 것이 극심한 기술패권 경쟁을 일으킨 목적이고 목표다.
우리가 이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기술패권 경쟁은 경제전쟁이다. 경제전쟁에서 군사는 기업이고 무기는 기술이다. 지금 최전선인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서는 우리나라에 강한 병사와 막강한 무기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장기전에서는 전선이 바뀐다. '반도체와 과학 법'만 들여다봐도 바이오, 인공지능(AI)과 양자, 로봇, 우주 등으로 전선이 이동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장기전에서는 예고된 전선뿐만 아니라 돌발적인 전선도 펼쳐질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쟁에서 끝내 이기려면 후방이 탄탄해야 한다. 기술 경쟁의 후방 보급창은 혁신이다. 혁신을 이어 가는 힘은 R&D에서 나온다. 혁신 자원을 풍부하게 하고 혁신 인재를 확보하고 혁신 파트너를 넓혀서 승산을 키우도록 법·제도·정책의 판을 바꾸어야 한다.
◇바뀌는 국제경제질서 판에 대응가능한 제도 변화 절실
먼저 혁신 자원을 풍부하게 하는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기술이지만 산업, 경제, 제도, 전략, 문화가 결합해서 경쟁이 펼쳐진다. 세상이 요구하고 만들어 가는 혁신은 인문사회계와 이공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기초연구법)'에서 자연과학을 기준으로 정의하는 기초연구로는 넓은 지식체계에 의한 융합적이고 통합적인 지식의 진전을 이루는 데 한계를 만들고 혁신 자원의 축소를 초래한다.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법·제도의 범위를 확장하고 일관성 있게 정비함으로써 혁신 자원을 최대로 풍부하게 확보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기술 경쟁에서 핵심은 혁신 인재다. 국내에서 가장 큰 차기 경쟁의 전선은 바이오헬스 분야라는 것을 모두가 말하면서 인재는 정작 묶고 가두고 있다. 이공계에서 의예·치의예·한의예·수의예·간호학·보건학·약학·한약학 등 제외를 제도로 못 박고 배제와 고립의 규제를 작동시키고 있다. 바이오헬스 경쟁에 나설 혁신 인재를 스스로 축소시키고 있는 인재 규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인구감소로 인재가 부족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제적으로 혁신 인재들이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학위 받고, 연구하고, 혁신기업을 창업하고, 성장하며 혁신 경쟁의 중요한 동반자가 되도록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패권 경쟁 핵심 전략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역량을 미국으로 유입하거나 주요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이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챙긴 미국처럼 우리나라 인재도 세계적 기업과 연구소로 가서 역할하며 핵심 인재로 성장해서 중요한 파트너가 되게 해야 한다.
인재 유출이나 두뇌 누수가 두렵다면 인재들에게 성장의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 보여 주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은 협력과 연대 강화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에서 R&D 투자와 같은 지표는 계속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기업 간 협력, 국제 협력과 같은 성과 확산의 주요 지표는 만년 꼴찌 수준이다. 우선 국내적으로 대학 중심으로 한 일방형 국내 산·학·연 협력 구조를 개편, 혁신 주체 간 다변화한 상호 협동 구조로 혁신 역량을 결합해서 길러 가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독자 경쟁력 확보를 넘어 다른 국가들과의 전략적인 국제 협력과 연대로 바깥세상의 실력 있는 혁신 자원을 우리 경쟁력과 합해서 시너지를 키울 수 있도록 판을 짜야 한다. 기술 경쟁에서 국제협력의 전략은 단순히 우리보다 선진기술을 갖춘 국가들과의 R&D 국제협력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와의 공조·협력 관계에서 더 큰 기회를 만들어 가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가장 먼저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 인류사회 공동의 목표 달성에 과학기술 혁신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신뢰·기대를 높이는 노력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공적개발원조(ODA) 등으로 지원받지만 앞으로는 기술·산업·경제적 파트너가 될 국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혁신의 자원·인재·기반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여건을 조성하도록 제도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경쟁이 심할수록 협력은 더 치열해야 한다.
문미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 munmiock@stepi.re.kr
〈필자〉 문미옥 원장은 포항공대(포스텍)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다가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에서 기획정책실장을 지냈다. 이후 2016~2017년 국회의원, 2017~2018년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 2018~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으로 일했다. 2021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으로 취임한 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기술패권 경쟁의 파고를 헤치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국가혁신 전략과 정책을 연구하도록 기관 경영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정책을 인재, 기업, 산업, 지역에 대한 성장전략으로 연결하고 국내외 네트워크의 확장과 함께 정책플랫폼으로 기능하도록 온라인, 오프라인 활동기반을 체계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우리의 미래와 글로벌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역할을 확대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