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뉴 삼성’으로 가는 길

2014년 5월 10일.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로부터 정확히 9년이 지난 2023년 5월 10일, 이재용 회장은 미국에서 첨단 산업 최일선에 있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를 만나 미래를 논의했다. 해외에서 미래 삼성을 위한 숨 가쁜 일정을 보낸 것이다.

이 회장에게 지난 9년이란 세월 중 절반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마음껏 역량을 펼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 족쇄는 지금도 평균 일주일에 한 번꼴로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난해 11월 회장으로 취임하며 과거와 단절된 ‘새롭고 강력한’ 삼성을 기대하게 했지만, 현재 상황은 녹녹치 않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중간 경제패권 다툼, 경쟁사 추격 등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 회장도 지금이 삼성에 큰 위기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올해 1분기 주력 사업인 반도체(DS)사업이 적자로 전환한 가운데 2분기에는 전체 실적이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런 위기감 때문인지 이 회장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회장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에서 총 22일간 미국에 머물며 20여명의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진을 만났다. 모두 삼성의 미래로 일컫는 인공지능(AI), 고성능컴퓨팅(HPC), 미래자동차, 바이오 등 영역의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다.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이렇게 긴 해외 출장은 없었다.

이 회장이 고된 미국 출장길을 마치고 귀국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미국에서 기업인들과 나눴던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있을 것이다. 재계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회장 취임 200일이 흘렀지만 표면적으로 삼성에선 큰 변화는 없었다.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통 큰 인수합병(M&A)은 물론 기존 사업을 견줄 만한 미래 신사업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 회장이 강조한 ‘뉴 삼성’은 반도체 부진이 해소된다고 자동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반도체를 넘어선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육성하기 위한 내부 혁신이야 말로 새로운 삼성의 청사진일 것이다. 내부 혁신을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책임경영 체제를 넘어서 그룹차원의 미래 전략 수립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시스템 개혁이 요구된다. 수년째 필요성이 제기되는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도 같은 맥락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가장 큰 위기요인은 업황 부진보다 조금씩 퍼지고 있는 내부 ‘무기력증’이라고 진단했다. 1등주의가 깨지고 있는데 구성원들의 반응은 관심없는 듯 시큰둥하다. 삼성 DNA를 깨울 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용철 기자
정용철 기자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