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에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용 프로세서를 공급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삼성전자 IVI 반도체가 현대차에 탑재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기업이 손잡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뉴스였다.
두 회사는 최근 차량용 디스플레이 분야 협력에서도 새로운 획을 그었다. 현대차 ‘제네시스’ 차기 모델에 들어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한때 자동차에서 경쟁했던 탓에 미지근했던 양사 관계가 협력 모드로 전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차와 삼성을 이어준 OLED는 삼성과 LG 사이 협력 키워드로도 연결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전파인증을 마친 83형 OLED TV에 LG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 하반기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라인업 가운데 일부지만 삼성이 TV와 디스플레이 모두 경쟁관계에 있는 LG 제품을 택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한걸음 뒤돌아가보면 삼성이 OLED 고객으로 확보한 현대차는 LG디스플레이의 기존 주요 고객사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경쟁하면서 고객을 뺏고 빼앗고, 또 다른 쪽에서는 경쟁자와 손잡는다. 이쯤되면 피아식별이 잘되지 않는다.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을 더한 ‘코피티션’이 우리나라 대기업 버전으로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이 손을 잡는 이유는 명확하다.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서 협력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이 과거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며 수직계열화 체제를 구축했지만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낼 수는 없다. 아무리 기술력이 높고, 뛰어난 시장 대응능력을 갖췄어도 한계가 있다. 서로가 윈윈할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협력이 필수다.
잇따르는 대기업 간 협력에는 최고경영진의 합리적인 판단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협력 사례는 개별 사업 책임임원의 결정을 넘어 그룹 총수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3세대, 4세대 그룹 최고경영자들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라면 경쟁자와도 열린 마음으로 협력방안을 찾는다. 그 결과 해당 기업을 넘어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 발전에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이쯤되면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가능한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코피티션을 구성하는 단어는 협력과 경쟁이다. 언뜻 협력이 보다 선한 가치로 보이지만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의 목적인 이윤 추구는 자사를 위한 것이지, 타사를 향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손잡은 기업이 당장 내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협력보다 경쟁에 무게중심을 둔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협력과 경쟁 속에 우리 기업의 역량이 높아지는 것이다. 현대차가 삼성 부품을 공급받아 차량 성능을 개선하면 세계 시장에서 제품 경쟁력도 올라간다. 삼성이 과감하게 LG OLED 패널을 도입하면서 한국 TV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또다른 기회를 맞았다.
새로운 코피티션 시대. 열린 생태계를 바라보며 협력과 경쟁을 이어간다면 경기 침체 속 우리 기업의 활로도 열릴 것이다.
이호준 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