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성공의 조건

무기발광 디스플레이가 다가오고 있다.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애플의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 소식이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애플이 국내 한 디스플레이 업체 공장에 마이크로 LED 파일럿 라인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마이크로 LED 칩을 배열하는 작업(전사)를 맡고, 국내 업체는 구동회로(백플레인)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애플이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전체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최종 양산 여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애플의 행보는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달갑지 않다.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에 삼성과 LG가 만든 디스플레이를 구매한 '빅 바이어'다. 애플이 디스플레이를 직접 만들어 자사 제품에 쓰기 시작한다면 그 여파가 국내 미칠 건 자명하다.

애플이 마이크로 LED를 준비하는 건 무기 소재 기반의 자발광 디스플레이 강점 때문이다. 무기물 소재는 현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쓰이는 유기물 소재와 달리 수명이 길어 화질 열화나 번인(Burn-in) 걱정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밝기에서도 우위에 있어 햇볕에서도 영상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도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육성을 추진한다. 주요 기술 개발을 지원해 다가올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다. 방향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무기발광 인프라가 우리에게 있을까란 의문에서다.

2010년대 초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LED 시장에 대거 진출했다. 새로운 광원의 등장으로 미래 새로운 시장이 예고돼서다. 그러나 이듬해 LED 조명이 중기적합업종에 포함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완제품까지 만들어 판로를 열어야 사업을 키울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 사이 중국은 대대적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저가 공세를 펼쳐 LED 시장을 석권했다. 야심 차게 LED 산업에 뛰어든 삼성·LG·포스코 등 대기업들도 사업을 대폭 축소하거나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너진 LED 생태계는 지금까지 여파를 미치고 있다.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로 LED TV를 만들고 있지만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 LED칩을 중국과 대만에서 구입하고 있다. LG도 대만 LED를 사용 중이다. 생태계가 망가진 결과다. 현재 국내에서 에피웨이퍼나 LED 칩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서울반도체, 삼성전자, 루멘스 정도로 한 손 안에 꼽힌다. 그나마 서울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정도다.

무기발광 디스플레이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국내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봐야 사상누각이 될 것이 뻔하다. 남의 배만 불리고, 실익은 거두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공급망이 재편되는, 특히 첨단 산업에서 패권을 쥐려는 보호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의존은 취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며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무기발광 디스플레이는 현재의 전사 방식 마이크로 LED 외 마이크로 OLED처럼 반도체 공정을 이용하는 기술도 있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기술 융합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세계적 디스플레이 회사가 국내 있고, 삼성과 하이닉스라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도 한국에 있다. 아울러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주요 기술 주체간 협력이 필수다. 삼성·LG 세트 기업과 서울반도체·루멘스 같은 부품 회사간 협력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 후발주자가 부족분을 채우고, 역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조만큼 빠른 길이 없다.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89형 마이크로 LED TV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89형 마이크로 LED TV <삼성전자 제공>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