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지난달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키면서 K-배터리 업계도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EU 배터리법은 배터리 공급망 실사, 탄소발자국 신고 의무화, 폐배터리 원자재 회수, 재활용 광물 사용 의무화, 배터리 여권 등 관련 규제를 망라한 것으로 내년부터 순차 시행된다.
EU 배터리법 통과 직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특정 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되거나 우리 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항은 없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다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담은 하위 법령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만큼 산업계에서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EU 배터리법 제정은 핵심원자재법(CRMA)과 탄소중립산업법(NZIA) 초안에 이어 EU 역내에 자체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EU 배터리법이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로 불리는 이유다. 유럽은 2027년까지 이차전지 셀을 역내에서 100% 생산하고 양극재도 67% 조달한다는 목표다.
미국 IRA와 달리 EU 배터리법은 명시적인 지리적 차별 조항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중국 견제라는 목적을 담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히 배터리 제조 전 과정에 대한 환경·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공급망 실사 규정과 탄소발자국 규정이 상대적으로 환경 규제가 약한 중국 내 기업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세계 2위 전기차 판매국이자 배터리 수요 대국인 만큼 EU가 구축 중인 이차전지 밸류체인에 올라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지 생산설비 구축이 최우선 과제다.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 생산기지를 가동 중인 배터리 3사를 비롯해 에코프로비엠, SK아이이테크놀로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SK넥실리스 등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현재 유럽 내 곳곳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가동하거나 마련하고 있다.
강화되는 환경과 노동 관련 규제에 대응해 공급망 리스크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탄소가 규제 명분이 될 공산이 큰 만큼 EU의 친환경 정책 기조에 발맞춰 제조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 감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지 생산 물량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배터리 소재 생산 공정에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에 충실하면 유럽 내 최대 배터리 공급국인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공격적으로 유럽 진출을 추진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