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간인 지적 자산에 대한 도용과 침해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법적 제재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게 됐다.”
중국 BOE와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는 삼성 측 입장이다. BOE를 겨냥해 뽑은 칼을 쉽게 집어넣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미국 텍사스 동부법원에 BOE를 제소했다. 아이폰12 이후 모든 아이폰에 들어가는 자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특허 5종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소송을 낸 건 BOE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해 1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부품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특허침해 OLED 수입금지를 요청하자, BOE가 5월 미국과 중국에 각각 특허 무효 소송과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ITC 제소는 BOE가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었지만 문제의 제품이 BOE 것으로 드러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BOE는 중국 소송에 삼성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까지 포함시켰다. 디스플레이 회사간 갈등을 고객사인 삼성전자로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BOE의 대응에 내년 출시하는 전략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추진하던 BOE OLED 탑재 뿐만 아니라 MX 사업부에서 추진하던 내년도 신규 개발 과제를 중단하고, TV에 사용하던 액정표시장치(LCD)도 다른 업체로 대체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과 BOE의 이번 소송은 특허 분쟁을 뛰어 넘는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미래가 달린 승부다. 스마트폰이 주 타깃인 중소형 OLED는 한국, 특히 삼성디스플레이가 처음으로 양산해 90% 이상 석권했던 시장이다. 그러나 중국이 LCD와 마찬가지로 손해를 보더라도 정부 보조금을 통해 공급을 늘리는 '인해전술'로 잠식하면서 추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톤파트너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중국의 소형 플렉시블 OLED 패널 출하가 대수 기준에서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중국은 프리미엄 시장마저 노리고 있다. 삼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애플 지원을 등에 업고 아이폰 공급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저가 OLED 패널로 점유율을 높여왔기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 하지만 애플 공급은 다르다. 가장 수익성 높은 프리미엄 시장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BOE는 중국 국영기업이나 다름 없다. 삼성이 위험을 감수하고 소송을 나선 것은 중국 시장 외 핵심 시장까지 내어줄 수는 없다는 절박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결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OLED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이자 국가 전략 산업이다. 아직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OLED마저 놓치면 우리나라 디스플레이는 소멸할지 모른다.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말이 있다. 벼랑 끝에 몰리는 절박한 상황에서야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소송을 중국에 한국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 침해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정부와 디스플레이 산업계가 힘을 모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