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대학들의 학사학위 이수 학점은 140학점을 훌쩍 넘곤 했다. 문·이과 가릴 것 없이 그랬다. 1년에 적어도 30-40학점을 수강해야 했고, 복수전공까지 하려면 동기들이 졸업한 후에도 2년 가까이 더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점점 학사학위 졸업 요건은 완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 많은 대학에서 120-130학점 정도면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복수전공을 하더라도 4년만에 졸업하거나 거기에 한 학기 정도만 더 수강해도 충분한 체계가 만들어 졌다.
대학교육 경량화는 학점 수 감소에만 그치지 않았다. 대학은 예전의 중고등학교 영역에서 담당했던 기초 교육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문과에서도 가르쳤던 확률, 통계, 미분, 적분, 행렬연산을 지금 교육과정에서는 이과에서 조차 의무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대학에서 감당해야할 수학 교육이 늘어났지만, 대학이 가르쳐야할 것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관련 교과가 좋은 예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가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이 시대에 정보관련 교과를 들을 수 있는 중고생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80년대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에도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그것을 외면했고, 하는 수 없이 당시 청소년들은 동네 컴퓨터 학원에 의존해야 했었다. 40년이 지난 챗지피티의 시대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뻣뻣하게 변화를 거부하는 교육과정 때문이다. 그 여파는 대학 교육의 책무 증가로 이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주어진 여건에서 대학은 몸부림을 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동안 부모가 감내해야 할 경제적 어려움을 알기에, 대학 등록금은 10여 년 째 동결되었고, 대학의 각종 인건비도 올릴 수가 없었다. 전세계 대학이 경쟁하는 시대에, 우리 대학들은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해외 유수 대학에서 일하는 최고의 교수들을 데려오기가 힘들다. 재원 부족도 문제이지만, 교수간 임금차이를 두는데 거부감이 큰 문화적 제약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여전히 그 소명을 다해야 한다. 챗지피티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충분한 교양과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지적 토론을 통해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 강의실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주저없이 부딪치고 열띤 토론이 자유롭게 벌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비록 설익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용기있게 그것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의 피드백을 접하며, 때로는 다른 이와 치열한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다. 자유로운 토론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최근 교수와 학생의 역할을 뒤집는 '플립 러닝'이나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학습하는 'PBL'이 각광을 받는 것도, 결국 수업시간에 할 일은 일방적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적 자극과 이견에 접촉하면서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의 시대에도 우리는 대학 강의실의 자유로운 지적 소통을 통해 단단히 기초부터 다져나가야 한다. 갈수록 챗지피티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이 나올 미래에 대한 대비의 의미도 있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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