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말레이시아에 첨단 패키징과 조립·테스트 공장(팹)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건설이 완료되면 총 16개 팹, 700만평방피트 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인텔의 종합반도체기업(IDM) 2.0 전략을 가속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21일(현지시간) 찾은 인텔 말레이시아 페낭 팹. 이 곳은 인텔 반도체 사업과 말레이시아 첨단 산업에 핵심 축을 맡고 있는 공장이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6위 반도체 수출국이다. 이 중 인텔이 20%를 담당하고 있다. 인텔 제품 상당 부분이 말레이시아에서 패키징-조립-테스트 과정을 거쳐 전 세계 수출된다.
인텔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말레이시아 내 추가 팹 건설에 60억달러를 더 쏟아붓기로 했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불붙고 있는 후공정(패키징)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후공정 핵심 전략 기지와 같은 말레이시아에 인텔이 진출한 건 1972년이다. 페낭에 팹을 건설했다. 인텔이 해외에 지은 첫 반도체 공장이다. 직원 100명으로 시작한 인텔 말레이시아 사업장은 이제 임직원이 1만5000명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페낭은 또 다른 인텔 공장이 위치한 쿨림과 함께 반도체 패키징과 조립 및 테스트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도체 조립은 '어셈블리'를 직역한 것이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고 고난도 기술을 요구한다. 어셈블리 과정에서만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공정 제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립 공정은 페낭 PGAT 팹에서 담당한다. 팹 내부에서 확인한 공정 대부분은 자동으로 이뤄졌다. 전통적인 반도체 어셈블리는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노동 집약적 공정이지만, PGAT에서 다루는 반도체 칩은 인텔의 최첨단 프로세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사파이어 래피즈의 '칩 어태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파이어 래피즈는 인텔의 최신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다. 칩 어태치는 웨이퍼에서 막 자른 반도체(다이)를 기판(서브스트레이트)에 부착하는 작업으로, 반도체와 기판을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칩 어태치 담당 인텔 엔지니어는 “반도체와 기판은 마이크로 범프로 연결하는데, 6초에 5만개 마이크로 범프를 한 칩에 부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와 기판 간 결합을 견고히하고 이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에폭시'를 주입하는 공정이 이어졌다. 디스펜서라는 장비로 에폭시 물질을 주입하는데, 인텔은 최근 주입구(헤드)가 두개 달린 장비를 생산성을 크게 키웠다. 이후 칩을 보호하고 열을 분산하기 위한 금속판인 '리드(Lid)'를 부착한다. PGAT에서는 사파이어 래피즈 뿐만 아니라 곧 출시를 앞둔 노트북용 CPU '메테오 레이크' 어셈블리도 이뤄지고 있었다. 메테오 레이크는 인텔 4공정(7나노)으로 만들어진 최신 반도체 칩이다.
어셈블리가 끝난 칩은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인텔은 프로세서 플랫폼 검증(PPV)을 통해 테스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서버나 데이터센터 등 고객사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최대한 모방한 검증 환경을 조성, '고객 맞춤형' 성능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최종 검사가 끝난 칩은 제품명과 시리얼넘버를 찍고 전 세계 공급된다.
페낭 팹 중 PG16에는 '메가랩'이라는 연구개발(R&D)센터도 위치해있다. R&D 단계에서 반도체 칩을 테스트하는 곳으로 성능과 품질을 최적화하기 마련됐다. 반도체 설계자산(IP)부터 실제 소프트웨어(SW) 구동 여부까지 전방위적인 칩 상태를 파악하고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를 해결, 제품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인텔은 조립과 테스트 중심인 인텔 페낭 팹을 종합 후공정 거점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 첫 공장(A1)을 세웠던 부지에 미식축구장(109.6×48.7미터) 12개 크기의 첨단 패키징 팹을 건설중이다. 인텔 최첨단 패키징 기술 '포베로스' 등을 적용, 차세대 반도체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인텔의 대대적인 투자는 말레이시아를 반도체 후공정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키우려는 포석이다. 인텔은 2021년 'IDM 2.0'이라는 전략을 세웠다. 전략 핵심 중 하나가 공급 능력 확대다. 반도체 시장의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제품도 다양해지면서 안정적 공급 능력이 반도체 제조사 핵심 역량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인텔이 위탁생산(파운드리)한 반도체와 인텔 자체 파운드리인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의 신규 고객 물량에 대응하려면 패키징과 조립·테스트 등 인텔 후공정이 담당해야할 물량이 급증할 수 밖에 없다. 오랜 기간 동안 반도체 후공정 분야 생태계를 키워온 말레이시아가 IDM 2.0 전략을 수행할 핵심 거점이라 판단한 것이다.
스티브 롱 인텔 아시아태평양·일본(APJ) 지역 총괄 대표는 “(생산능력 확대) 일정과 제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면 첨단 패키징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가 인텔 투자를 지속 유치할 수 있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는데, 말레이시아는 다수 '자유무역지대(FTZ)'를 조성한 것이 주효하다는 평가다. 기업에 세금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인텔과 르네사스, 웨스턴디지털(WD) 등 다수 반도체 기업이 말레이시아 FTZ에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생산 제품 80% 이상을 수출하면 수입 관세, 판매세, 소비세 등을 면제 받는다.
AK 총 인텔 말레이시아 총괄(부사장)은 “세금 면제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인센티브와 대학과 연계된 인력 채용 등 다양한 혜택이 균형 잡혀 있다”며 “인텔이 말레이시아에 후공정 팹을 짓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페낭(말레이시아)=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