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보통신기술(ICT)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지난해 말 등장한 챗GPT가 던진 충격파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MZ세대가 첫 만남에서 MBTI(성격 유형 테스트)를 물어보며 상대방 성향을 파악하듯이, IT업계 관계자들은 AI가 초래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견주는 게 첫 인사가 됐다. 아직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막연한 비관주의도 경계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AI가 가져다줄 예측불허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올해 여름 극장가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강타한 영화 면면이 흥미롭다.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의 빌런(villain)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바로 AI(엔티티)다.
엔티티는 디지털 세계를 지배하며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한다. IT환경에선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도 엔티티 손바닥 위에 있을 뿐이다. 결국 에단 헌트는 팀원과 통신수단 등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환하며 대항을 이어간다. 인간이 만든 IT 환경에서 인간이 AI를 당해내지 못하는 내용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다.
최근 공개된 OTT 콘텐츠인 '하트 오브 스톤'에서도 AI(하트)가 등장한다. 하트는 세상 모든 것을 해킹해 데이터를 수집, 모든 상황의 확률을 계산한다. 하트를 지배하는 자가 곧 세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 하트를 노리는 일당이 외부에서 하트 시스템에 침입하기 어려워 주인공 몸에 칩을 박아 해킹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요리사가 쥔 칼은 훌륭한 조리도구지만, 강도 손에 들어간 칼은 흉기가 된다. AI라는 무기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향은 극과 극일 수 있다.
압권은 영화 '오펜하이머'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지만, AI시대 초입에 들어선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AI개발자와 오펜하이머의 유사성에 대해 지적했다. 오펜하이머가 주도해 개발한 원자폭탄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협을 인류에 떠안겨준 것처럼, AI도 인류를 절멸로 몰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수많은 석학이 AI가 원자폭탄보다 더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원자폭탄 개발로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이 열리듯, 불가역적인 결과를 낳는 결정의 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제2 오펜하이머의 순간이라 할 만하다.
AI 기술 개발을 위한 각론은 곳곳에서 나오지만 정작 총론이나 거대 담론은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AI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를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조재학 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