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를 갈고, 여과지에 커피를 내리는 수고 없이도 향긋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캡슐커피 머신만 있다면. 그런데 마실 때는 편리한데 마신 이후가 골칫거리다. 제품의 특성상 뚜껑과 커피찌꺼기 등을 제거하기 쉽지 않아 분리배출이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캡슐커피 머신을 판매하는 가전업체는 캡슐 재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소비자들이 쓴 캡슐을 모아 다른 플라스틱의 원료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돌체구스토와 네스프레소 캡슐 수거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실천하지만 캡슐을 재활용하는 과정이 번거롭다. 돌체구스토 캡슐의 경우 전용 재활용 백이 있다. 먼저 공식 홈페이지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재활용 백을 함께 주문한다. 이후 홈페이지에서 재활용백 수거를 신청하면 된다.
여기서 문제 하나. 재활용백 수거는 매장을 통해서는 불가능해 택배로만 가능하다. 문제 둘. 재활용백 수거는 최근 한 달 내 주문을 한 이력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재활용 백 하나에 40~50개의 캡슐이 들어간다. 매일 빠짐없이 캡슐을 한 개 이상 마셔야만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띄엄띄엄 마시는 날에는 봉투 하나를 채우는데 2~3개월 넘게 걸린다. 주문한 지 오래되면 집에 캡슐이 남아있더라도 캡슐을 추가로 구입해야만 수거를 신청할 수 있다.
문제 셋. 택배기사가 캡슐 수거를 꺼린다. 다 마신 커피 캡슐 안에 커피 찌꺼기와 액이 남아있는데 오래되면 고린내가 난다. 흔들리는 택배차 속에서 액체가 재활용백 밖으로 넘칠 수도 있다. 캡슐 수거를 요청하면 택배기사가 비닐봉투에 추가로 담아달라고 몇 차례나 당부했다. 안정적으로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 택배기사도 불편하고 이를 부탁해야 하는 소비자도 편치 않다. 커피 캡슐을 재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기 위한 여정이 길다.
네스프레소 캡슐도 비슷하다. 네스프레소의 경우 수거 가능한 오프라인 매장이 있지만 함정이 있다. 강원, 제주에는 매장이 없다. 전남에는 2곳 경북에는 포항에 1곳만 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오프라인 수거를 이용하기 어렵다. 택배 수거도 다른 제품을 구입해야 재활용백 수거 요청을 할 수 있다.
기업이 재활용 시스템을 갖춘 것은 바람직하지만 '소비자들이 친환경 프로그램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거가 복잡해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버렸다” “수거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등 불편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애꿎은 곳에 커피캡슐이 버려지지 않길, 더 많은 커피 캡슐이 기업의 재활용 프로그램 속에서 새 원료로 탄생할 수 있길 바란다. 보다 편리하고 고객 친화적인 재활용 프로그램으로 보완이 필요하다.
김신영 기자 spicyzer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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