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건망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호주 여성의 뇌 속에서 살아있는 8cm 길이의 기생충이 발견됐다. 특히 그간 인간이 감염된 적 없었던 종류의 기생충이라 의료진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28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거주하는 A(64·여성)씨는 3주간 이어진 복통과 설사, 마른기침, 발열, 도한증 등으로 2021년 1월 지역 병원을 찾았다.
A씨는 치료받았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고, 2022년에는 건망증과 우울증까지 생겨 수도 캔버라에 있는 더 큰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캔버라 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진행했고, 뇌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며칠 뒤 수술을 집도한 하리 프리야 반디 신경외과 교수는 수술 중 깜짝 놀랐다. 8cm 정도 되는 길이의 '벌레'가 뇌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디 박사는 수술 중 A씨의 뇌 속에서 빼낸 기생충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동료들을 소집하고 회의를 열었다. 추가 치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생충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생충은 감염병 의사들조차 본 적 없는 종류였고, 의료 서적까지 뒤져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의료진은 호주 최대 종합 연구 기관인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에 기생충을 보내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오피다스카리스 로베르시'(Ophidascaris robertsi)라는 이름의 회충으로 확인됐다는 답을 들었다.
이 기생충은 주로 호주 동남부 지역에 사는 비단뱀 체내에서 발견되던 것으로 이전까지 사람 몸에서 확인된 적 없었다. 이번이 확인된 첫 번째 인간 감염 사례다.
전문가들은 비단뱀의 배설물을 통해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A씨가 비단뱀의 배설물이 묻은 풀을 만진 뒤 주방 기구를 사용해 기생충의 알이 옮겨졌거나, 생채소를 먹어 감염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캔버라병원의 감염병 전문의인 산자야 세나나야케는 “누구도 비단뱀 회충에 감염된 최초의 환자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를 알리는 데 동의한) 여성은 매우 용감하고 훌륭하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또 다른 유충이 간 등 다른 기관에 침투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가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의료진은 A씨가 치료 후 양호한 상태며 장기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례는 학술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간하는 신종감염병 학술지(Emerging Infectious Diseases) 9월호를 통해 소개됐다.
세나나야케 박사는 “이번 사례는 인간과 동물이 더욱 가까이 살기 시작하면서 전염되는 질병과 감염의 위험성을 알려준다”고 평가했다.
전염병 전문의 피터 콜리뇽 교수는 “동물과 접한 환경에서 음식을 깨끗이 씻고 제대로 조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물리지 않도록 긴 소매로 보호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