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에서 미사에 사용하는 포도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제가 바치는 축성 기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피'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미사주는 교회법에 따라 첨가물 없이 빚은 포도주여야 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상징적 의미가 큰 만큼 포도주의 생산부터 관리까지 엄격히 진행한다. 과거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포도주를 전량 수입해 미사에 사용했다. 그러나 배송 중 깨지거나 상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국내산 와인 생산 초기였던 1977년 당시 한국 교회는 국내산 와인인 '마주앙'을 교황청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을 요청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승인하면서 아시아 최초로 미사주가 선정된 것이다.
매년 8월 말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에는 미사주 축복식이 열린다. 미사주로 봉헌되기 전 포도주가 잘 빚어지길 바라는 미사 행사다. 올해는 지난 23일 롯데칠성음료 경산공장에서 진량성당 이종하 스테파노 주임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주는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모두 사용하는데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 요즘엔 미사를 집전할 때 얼룩이 덜 남는 백포도주가 주로 쓰인다. 미사주를 만드는 포도도 엄격히 관리된다. 백포도주는 경북 의성에서 재배하는 세이벨 품종으로 만든다. 세이벨은 당도가 높고 우리나라 기후에 잘 맞는 품종이다. 적포도주는 경북 영천 지역에서 재배한 MBA품종을 쓴다. 당도가 높고 신맛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마주앙 생산은 평균 2개월의 발효 과정을 거쳐 6개월~1년 여간 숙성 기간을 갖는다. 이를 병입한 후 전국 가톨릭 교구로 보내져 본당과 교구에서 미사 때 사용한다. 현재 미사주의 알코올 도수는 12도다. 과거에는 7도였지만 도수가 낮아 금방 상하는 탓에 1998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도수를 높였다.
마주앙이 미사주로 선정된 해는 첫 출시 시기와 같은 연도다. 마주앙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것을 보고 당시 출장에 동행했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 박두병 회장)에게 포도주를 만들길 권하면서다.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는 1973년부터 농장을 조성하고 경산에 마주앙 공장을 설립했고 1977년 5월 국내 최초의 국산와인 마주앙 스페셜 화이트와 레드를 출시했다. 이후 두산주류 매각으로 현재는 롯데칠성음료에서 마주앙을 생산하고 있다.
마주앙 미사주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집전 미사에 미사주로 사용됐다. 이달 초 열린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서 차기 대회 개최지가 한국으로 정해졌다. 오는 2027년에 열리는 대회를 통해 네 번 째 교황 방한이 성사될 예정이다. 3년 후 방한 미사에서도 마주앙이 미사주로 오를지 기대된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