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 중심이 된 시대는 인공지능(AI)이 사회 전반을 아우릅니다. AI를 외국에 의존하면, 곧 사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격이 됩니다. 우리 과학기술, 디지털 주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국산 AI'를 비롯한 우리 디지털 기술 확보가 제1과제라고 밝혔다.
그리고 투자가 이를 담보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지금 과학기술 위상을 갖추고 경제발전을 이룬 것도 결국 과학기술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선택과 집중'에 따른 효율적인 투자로 유망 기업 성장 여건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또 투자는 부단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정학적인 우리 위치, 국제 관계를 고려한 전략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단순한 연구개발(R&D) 지속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에 KAIST 역시 새시대에 부응하는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자신문 창간 41주년을 맞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총장이 쏟아낸 인사이트들이다. 우리 디지털 현황진단부터, 대응전략, KAIST의 노력 등을 함께 살펴봤다.
-먼저 우리 디지털 현주소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역대 정부는 디지털 분야에 많이 투자했고, 성과도 상당했다. 여러 부분에서 세계 수위권을 다툰다.
우리 KAIST를 예로 보면 CS(Computer Science) 랭킹에서 2018~2022년 전체 14위를 기록했다. 특히 AI·머신러닝은 4위다. AI 및 응용 톱학회 논문수도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독일과 등 세계 디지털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황이다.
물론 미·중까지는 아니다. 아쉬운 점이지만 '스케일'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적은 살림살이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를 이룬게 사실이지만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더 많은 디지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인가.
▲당연하다. 디지털 영역을 비롯한 과학기술 발전은 마치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콩나물 시루는 물이 금방 빠진다. 귀찮고 힘들어도 계속 물을 줘야한다. '헛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분명히 콩나물은 자란다. 과학기술 성과와 닮았다.
우리 과학기술은 그동안 장기적 안목의 지원·투자로 성장했고, 경제발전을 견인했다. 우수한 성과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는다.
의미 깊게 볼 것이 삼성이다. 모두가 어려운 지금 상황에서 R&D를 확대하고, 교육훈련비를 증액했다더라. 지난 흑자 시절 투자를 늘렸다면 지금의 어려움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놀라운 대응이고 본받을 일이다. 국가 차원으로도 이런 식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어떤 분야 투자가 중요하다고 보는지.
▲정부가 정한 12대 국가전략기술분야는 모두 중요하다. 우리 주된 먹거리인 반도체와 통신 영역을 비롯해 양자와 신기술 영역 모두 그렇다.
그런데 특히 중요성을 따진다면 단연 AI라고 본다. AI는 앞으로 국가 기반 인프라가 된다. AI가 사회 전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결국 외국산 AI를 쓴다면, 사회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기는 꼴인 것이다. 당연히 국방과 같은 민감한 영역도 포함해서다.
또 지금에야 챗GPT 같이 외산 AI를 무상으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나중에도 이럴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우리 AI를 키워야 한다. 아래아 한글,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 공고한 지위를 가진 자체 성과들이 있는데, 한국형 AI와 관련 산업도 이렇게 성장시켜야 한다.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정부와 국민이 과거 40년 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가 기간산업을 일으킬 때 관점 말이다.
조선, 자동체,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킬 때 온 나라가 힘을 보탰다. 당시 기업들의 자구노력이 컸지만, 우리 국민이 피와 땀을 내 이들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었다. 그 성과가 지금 우리 기간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처럼 선택과 집중으로 몇몇 유망 기업을 선정해 전폭 지원하고, 우수한 한국형 AI가 만들어지도록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공정한 심사가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뒷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이것뿐이다. 분산된 힘을 모아 우리 자체 AI와 기간산업을 이뤄야 한다.
이와 별개로 디지털 기업 전반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사실 현재 AI 기업들은 대부분 초기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역량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를 보고 출혈을 감내하는 것이다. 융자나 인력지원 보조금 등이 절실하다.
-국산 AI와 산업을 일궈내도 활용이 국내로 한정되면 자생력을 갖추기 어렵다.
▲미국이나 중국 AI의 영향력이 덜 미치는 국가들에서 시장을 차지하고 세력을 키워 훗날을 도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삼국지 속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내놓은 '천하삼분지계'와 같다.
AI 세계 구도는 현재 춘추전국시대와 같다. 정부에서 충실히 힘을 실어주고, 외국에서 세력을 얻는다면 여러 나라 중 하나에서 미국·중국의 뒤를 잇는 '3강'의 한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고 본다. 기술력으로 일본이나 독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꿈같은 일이 아니다. 지원과 노력 여하에 달렸다. 이미 그런 사례도 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라인이 그렇다. 일본과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지리, 문화적 친연성이 있는 이들 나라를 기반으로 우리 AI 발전과 확장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해소해야 할 디지털 관련 규제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는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원격진료에 걸린 규제들을 해소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원격진료는 세계적인 대세다.
원격진료 병원이 만들어진다면 단순 의료 뿐만이 아니라 연계된 다양한 '디지털 헬스 산업'이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게 된다. 규제를 언제 해소하느냐에 따라 시장을 차지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당사자들에게 논의를 맡겨둔다면 갈등 해소는 요원하다. 정부의 조정, 의지가 필요하다.
물론 논란은 있을 것이다. 다만 미래를 봐야한다고 본다. 이 결정이 훗날 국가 발전의 또 다른 기회로 평가될 수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김대중 대통령의 초고속 통신망 구축도 당시에는 '이것이 왜 필요한가'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지금 보면 꼭 해야 했던 일이다. 미래를 생각해 과감하고 빠르게 원격진료 규제 해소가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영역에서 KAIST의 역할도 중요하다.
▲KAIST는 늘 해왔던 역할을 할 것이다.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 디지털 영역에 집중해 우수 인력을 양성할 것이다.
특히 AI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영역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AI에 설명가능성을 부여하는 XAI연구센터를 운영중이고, 네이버와 초창의적 AI 연구센터를 설립해 대규모 멀티모달 생성AI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KAIST 김재철 AI 대학원도 있다. 미래형 AI 과학영재학교도 예타 조사 면제를 받아 설립이 순항 중이다.
학내에 AI를 연구하는 교수진이 50여명이고 관련 응용분야도 200명이 넘는데, 이들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AI만 연구하는 교수가 기존의 2배, 100명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과학기술이 그렇지만 원천 분야를 연구해야 그 성과가 배가된다. 순수 AI 연구진 확충으로 이를 이루고자 한다.
또 기업 연계도 확대하고자 한다. 현재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이런 사례를 보다 늘리고자 한다.
KAIST의 양성 인력들은 과거부터 핵심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하는데 힘을 보탰다. 더 많은 KAIST 출신들이 우리 기업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잠깐 언급했지만, 디지털 헬스 영역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디지털 헬스 자체는 앞으로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진단에 도움을 줘 개인 맞춤형 의료 시대를 연다.
그동안은 의학과 디지털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했는데, 이를 합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사람들이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애초에 디지털의 장점은 기존 학문, 분야를 강화하는 것에 있다.
문제는 이에 발맞춘 인력 양성이다. KAIST는 그동안 의과학대학원을 운영하며 184명 의사과학자들을 양성해 왔다. 이제는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이하 과기의전원)을 설립해 보다 많은 의사과학자를 배출코자 한다.
의사과학자 인력, 이들이 구현할 기술이 더없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이미 시기가 무르익었다. 과기의전원 설립을 역점 추진하고 있다.
늘 밝히는 바지만, '또 다른 의사'가 아닌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글로벌 바이오헬스 산업을 선도할 인재를 고르게 배출할 계획이다. 2025년 가을에 신입생을 모집하고 이듬해 봄학기에는 개교하고자 한다.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세계 연구진과의 협력도 중요한데 계획이 있는지.
▲이전부터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큰 물에서 놀 때 성과를 배가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동부 명문인 뉴욕대와 디지털 AI 분야 연구협력을 긴밀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미 KAIST는 뉴욕대와 공동캠퍼스 구축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 핵심 영역이 디지털과 AI다.
즉답을 하기에는 아직 확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이미 양교 교수들은 적극적으로 협력에 임하고 있다. 단순히 학교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경제적인 영역까지 협력과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창간 41주년을 맞은 전자신문에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과학기술, 디지털 발전에는 전자신문 공헌이 지대하다. 단지 소식을 전하는데 그치지않고, 우수 인재들이 IT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해 우리가 오늘날 IT 선진국이 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과학기술과 산업 지평을 넓혀가는 전자신문의 41주년을 축하한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1985년부터 KAIST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산학과 바이오 및 뇌공학과 가르치며 고 김정주 넥슨 회장을 비롯한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을 길러내 '벤처창업 대부'로 불린다. 학내에서 바이오 및 뇌공학과장, 과학영재교육연구원장,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 2021년 17대 KAIST 총장이 됐다. 오랜 교육자이자 연구자 활동으로 프랑스 정부 슈발리에 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녹조근정훈장, 국회의장 공로장 등을 받았다. 현재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