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국정감사 시즌이다. 2023년 국감은 오는 10일 시작해 27일까지 열린다. 국회 상임위원회 후 이어지는 겸임위원회 일정까지 감안하면 다음달 3일까지 3주 넘게 국감 이슈가 세간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감 피감기관은 지난해보다 8곳 늘어난 791곳이다. 해마다 관심을 모으는 상임위별 증인·참고인 채택도 막바지 단계다. 아시안게임 축구 한국·중국 8강전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떠오른 '여론 조작' 논란을 필두로 국감장에 오르기 좋은 이슈도 때맞춰 등장하고 있다. 감사, 피감 양측 모두 국감 준비는 얼추 마친 상태다.
공교롭게도 지난 수년간 국감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국감을 앞뒀거나 마무리되는 국면에 어김없이 칼럼 마감 차례가 돌아왔다.
참고 삼아 지난 글을 들춰보니 쑥스럽게도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피감기관장에 대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공격적인 질의, 반대로 하루 종일 대기하다가 말 한마디할 기회도 못 얻고 돌아가는 형식적인 국감에 대한 지적. 대기업 총수부터 중소·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일단은 불러보자는 막무가내식 기업인 증인 신청과 날카로운 질의는 빠진채 고성을 동반한 호통에만 치중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
비슷한 칼럼은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지만 매년 고질적인 문제를 되풀이하는 국회 핑계도 들고 싶다. 안타깝게도 올해 국감도 이 같은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특히 기업인 호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다.
명절 연휴 이후 기업 임원 A에게 인사차 전화를 하니 덕담 대신 “아직 우리 회사에는 압박이 심하지 않지만 남은 기간 또 어떻게 분위기가 바뀔지 몰라 국감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A는 국감 기간에는 사실상 '비상대기' 상태라고 했다.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을 비롯해 다수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임위도 일부 남아 있어 기업인 증인 채택을 둘러싼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증인으로 채택됐거나 신청된 기업인 가운데는 국감장에 서야할 이들도 있다. 기업 경영활동 과정에서 발생했더라도 국민 삶과 국가 경제질서를 해치는 일이라면 국감장에서 설명해야 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출석 이후다. 대부분 의원이 질의하고 대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면박주기식 호통에 머문다. 국감장에 나온 기업인을 '혼쭐' 내야 국회의원으로서 제역할을 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무조건 총수를 증인으로 불러내려는 무리수도 여전하다. 앞서 정무위에서도 4대 그룹 총수 증인 신청이 나왔지만 '아직은' 채택되지 않았다.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는 제도는 필요하다. 다만 국감에서 기업 CEO나 임원들이 '죄인' 취급 받지 않고 글자 그대로 '기업인'으로 출석하면 좋겠다.
의원들은 호통만 칠 게 아니라 기업인이 명확한 해명과 대책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법·제도 차원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을 의원과 기업인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찾아야 한다. 기업을 주저앉히는게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국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이호준 전자모빌리티부 부국장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