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담당 기자로 살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누구보다 먼저 신차를 타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타이어 회사에서도 신제품이 나오는데요, 이 또한 체험해볼 기회가 주어집니다.
최근에는 미쉐린이 마련한 전기차 전용 타이어 시승회인 '미쉐린 X AMG EV 트랙데이'가 열렸습니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EV를 장착한 메르세데스-AMG를 타고 경기도 용인 AMG 스피드웨이를 달려보는 행사였습니다.
타이어는 차의 성능에 큰 영향을 줍니다. AMG 전기차처럼 고성능 차에는 타이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전기차는 일반적인 내연기관에 비해 차체 중량이 약 20% 무거워 코너링 때 횡력이 많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또한 초기 가속력이 좋아서 타이어가 더 쉽게 마모되며, 특히 배터리 무게가 후륜 타이어 마모에도 악영향을 미치죠
미쉐린이 중점을 둔 건 크게 네 가지인데, ▲배터리 수명과 주행거리 최대화 ▲회생 제동 및 높은 순간 토크 대응 ▲높은 차체 하중 대응 ▲내부 소음 감소 등이 그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쉐린은 트레드 패턴 중앙에 고강도 컴파운드를 적용했고, 고강도 케이싱 보호 벨트를 통해 배터리 지속시간을 늘리며, 최적화된 콘택트 패치를 통해 수명도 늘렸습니다. 수년 동안 진행된 포뮬러 E 대회 후원을 통해 이러한 기술 발전이 가능하게 된 거죠.
또한 엔진음이 없는 전기차는 타이어 구동음이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는데, 미쉐린은 폴리우레탄 폼 링인 '미쉐린 어쿠스틱(Acoustic)' 기술 적용으로 소음을 줄였다고 합니다.
행사는 조별로 진행됐는데요, 제가 속한 조는 시뮬레이터로 기록을 체크하는 '타임 어택'부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서킷 체험에 앞서 몸풀기에 좋은 코너죠. 컨트롤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동 감각이 실제와 너무 달라서 급코너에서 자꾸 실수를 저질렀죠. 그래도 초반에는 3위 정도 랭크됐었는데, 나중에 보니 10위 밖으로 밀렸더군요. 이 분야의 고수가 많다는 뜻일 겁니다.
다음 순서는 '드래그 레이스'입니다. 출발선에 선 두 대의 시승차가 진행자의 무전을 들은 후 사인보드의 불이 완전히 꺼지면 동시에 출발하는 것이죠. 이 코스는 단순히 누가 더 빠른가를 겨루는 게 아닙니다. 내연기관보다 월등히 강력한 전기차의 초반 가속을 타이어가 얼마나 받쳐주는지를 느껴보라는 겁니다.
시승차인 메르세데스-AMG EQS 53 4매틱은 최고출력 484㎾(658마력), 최대토크 96.9㎏·m인 고성능 스포츠 세단입니다. 정지에서 시속 100㎞까지 3.8초밖에 걸리지 않는 강력한 가속력도 일품이죠. 그러나 무거운 차체가 급격히 가속하면 타이어는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됩니다.
이번 드래그 레이스에서 테스트해보니, 급출발 때 타이어가 헛돌지 않고 스프린터(sprinter, 육상이나 수영 단거리 선수) 같은 민첩함을 보여줬습니다. 여러 차례 해봐도 성능 변화는 없었습니다.
다음 순서는 '리드 & 팔로우'였는데요, 이건 선도차를 따라서 참가자들이 서킷을 주행하는 코너입니다. 시승차의 가속성능, 주행안전성, 제동성능과 함께 타이어 성능까지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순서죠.
AMG EQ 차량으로 서킷을 달리는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 6월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마련한 'AMG EQ 익스피리언스 데이'에서 국내 미디어에 최초로 AMG EQS와 EQE의 서킷 주행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이미 한 번 경험해서 이번 시승은 더 편안했습니다.
가장 돋보였던 건 고속주행에서의 안전성과 승차감이었습니다. 무거운 차체 중량이 고속 코너링 때 부담을 줄 만한데, AMG EQS와 EQE에 적용된 에어매틱 서스펜션과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EV의 찰떡궁합 덕에 자신감이 생겨서 자꾸 속도를 높였습니다.
다만 AMG EQ 두 모델은 브레이크 성능을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지난 6월 몇 대의 시승차가 서킷 주행 후 후륜 브레이크에서 많은 연기를 뿜어낸 적이 있는데요, 이번 행사에서는 '택시 드라이빙' 때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반도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긴 한데, 고성능 모델이라면 이러한 상황도 대비하는 것이 좋겠죠.
마지막은 짐카나 행사입니다. 서킷 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너죠. 짐카나는 고깔 모양의 파일런 사이를 재빨리 통과하는 것인데요, 누가 더 빠른 기록을 내는지 체크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주는 숱하게 해봤고, 기자들끼리도 상대방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제 실력은 간혹 포디엄(1~3위)에 설 정도는 되어서 이날도 약간의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날 행사는 세 번의 연습 주행을 한 후, 한 번의 기록 계측이 진행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연습할수록 기록이 조금씩 단축돼 기대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짐카나는 단순히 좁은 곳에서 차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지만, 차와 타이어의 성능, 운전자의 실력이 짧은 시간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만약 같은 실력의 서로 다른 운전자가 같은 차로 경주한다면, 타이어의 성능이 승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죠.
코스는 약간 복잡했습니다. 출발 직후 파일런을 좌우로 통과한 후, 왼쪽으로 크게 돌아서 파일런을 한 바퀴 돈 다음에 반대편에 있는 파일런을 또 한 바퀴 돌고 나서 결승점을 향해 들어오는 구성입니다. 결승점 직전에 급하게 차선을 바꾸는 게 포함돼 있는데, 여기서 욕심을 부리면 파일런을 건드릴 수 있죠. 파일런 하나 건드리면 2~3초가 가산되므로 너무 빨리 가는 것보다는 라인을 정확하게 타는 게 더 좋습니다.
저는 이번 행사에서 27초 26의 기록으로 참가자 중에 1위에 올랐습니다. 사실 저보다 더 빠른 기록을 세운 참가자도 있었는데, 파일런을 건드리는 바람에 제가 1위에 오른 것이죠.
저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2, 3위 참가자는 모두 기자가 아닌 인플루언서였습니다. 이날 참가한 기자도 적지 않은데 약간 아쉽더군요. 그래도 시상식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승 행사를 참가해왔는데요, 이번에도 느낀 건 차에 어울리는 타이어를 써야 한다는 겁니다. 질 낮은 타이어를 쓰면 차의 성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할뿐더러 주행 중에 위험한 상황을 겪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차에는 지금 어떤 타이어가 달려 있나요?
전자신문인터넷 임의택 기자 ferrari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