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전파과학자의 헌신 되새겨야

김기채 영남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김기채 영남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전파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세계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전파 실용화 이전인 1890년대 필라델피아 거리 모습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4층 건물보다 높은 13단 전봇대에는 약 300개 전선이 도로 양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파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 세계는 온통 전선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고 지상과 지하 세계는 전신전화선으로 가득찬 '거미줄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정적인 정보와 동적인 통신이 결합돼 정보화사회로 진화됐고, 특히 전파를 사용하는 무선통신기술은 초연결사회를 가능하게 해 스마트사회가 구축됐다. 60㎐ 전파를 사용하는 전기에너지의 공급과 마이크로파 등의 전파를 사용하는 정보의 전달없이는 4차 산업혁명 어젠다도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시대 전파과학자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여기까지는 전파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지하고 있는 일반적 견해다.

현재의 인공지능(AI) 기술과 융합하고 있는 다양한 패러다임 등장은 미래의 고용 창출과 부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모든 사람의 주목과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화려하지도 않고 주목을 받지도 못하지만 국가 안위와 번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기초 및 응용연구의 정점에 있는 국방 연구와 측정표준 연구다.

'국가 안위'와 '국가 번영'이라는 키워드는 우리의 선조들이 힘써 지켜왔고 현재 우리에게 이어져 장차 우리의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전승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국가 안위를 보장하게 하는 국방력은 최첨단 무기체계의 확보와 직결된다. 최첨단 병기의 연구 개발에서 전파를 사용하는 무기체계는 레이더 등 관련 전문 분야의 과학자를 포함해 특히 전파과학자의 연구와 역할이 중요하다.

최첨단 병기를 실체화 하는 과정에서 건실한 방위산업체의 확보는 필수다. 방위산업은 '국가 안위'를 보장하는 기반이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측정표준의 확립과 유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측정표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방위산업을 포함한 일반 산업이 구체화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연구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구와 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구,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연구가 있다. 국방 연구와 측정표준 연구는 누군가는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연구인 셈이다. 상업적으로 화려한 어젠다가 아니라 주목받지 못한다지만 우리는 이러한 과학자, 연구자의 헌신과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묵묵히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와 연구자를 '드러나지 않는 과학자 애국하는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자를 아끼고 대접하는 나라는 번영을 이루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퇴한다는 사실은 과학기술 역사가 잘 말해준다. 오로지 국가에 대한 헌신과 과학에 대한 열정만이 있는 연구자를 통상의 평가 시스템으로만 평가해 손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연구하는 과학자, 극도의 인내심과 애국심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자를 봐야한다.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했다.

국가 안위와 국가 번영을 위해 매진하는 과학자들에게, 국가에 대한 헌신과 과학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국가는 성공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연구자를 보호하는 국가 정책이 반드시 수립되기를 기대해본다.

김기채 영남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kckim@ynu.ac.kr